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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게/문효치 - 카톡 좋은 시 153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5. 7. 2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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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톡 좋은 시 153

   병病에게

   문효치

  

   너에게 사랑의 편지를 쓴다
   가끔 이름은 바뀌었지만
   평생 내 몸 속에 들어 나를 만들고 있었지
   이런즉 병이 없었다면 나도 없었을 터
   어머니가 나를 낳고 네가 나를 길러주었다
   이제 너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사실은 내가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하노라 쓰기 위해선
   내가 병을 가장 사랑한다라고 쓰면 된다
   뭐든 오래 같이 있으면 정이 든다
   평생을 함께 한 너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정들면 예뻐 보이는 법
   야, 너 참 예쁘구나
   세상이 모두 나를 버리려 하는 겨울의 문턱에서도
   너는 내 속에 깊이 들어앉아 있구나
   밭은기침으로 살과 뼈의 아픔이 잦아들지만
   마음의 병도 함께 살고 있다
   변치 않는 평생의 벗
   오늘은 너에게 편지를 쓴다 

 

  -시집『칠지도』(지혜, 2011)

 

 

 

 

병病에게


문효치

 


너에게 사랑의 편지를 쓴다
가끔 이름은 바뀌었지만
평생 내 몸 속에 들어 나를 만들고 있었지
이런즉 병이 없었다면 나도 없었을 터
어머니가 나를 낳고 네가 나를 길러주었다
이제 너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사실은 내가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하노라 쓰기 위해선
내가 병을 가장 사랑한다라고 쓰면 된다
뭐든 오래 같이 있으면 정이 든다
평생을 함께 한 너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정들면 예뻐 보이는 법
야, 너 참 예쁘구나
세상이 모두 나를 버리려 하는 겨울의 문턱에서도
너는 내 속에 깊이 들어앉아 있구나
밭은기침으로 살과 뼈의 아픔이 잦아들지만
마음의 병도 함께 살고 있다
변치 않는 평생의 벗
오늘은 너에게 편지를 쓴다

 

 

 

-시집『칠지도』(지혜,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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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게


조지훈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의 외경(畏敬)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즉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생에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
언잖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
자네는 몇날 몇달을 쉬지 않고 나를 설복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傾倒)하면
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
잘 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리 다시 인생을 애기해보세그려.

 

 


(『조지훈 전집 1』. 나남. 1996)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