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좋은 시 160 통증 고영민
중국에는 편지를 천천히 전해주는 느림보 우체국이 있다지요 보내는 사람이 편지 도착 날짜를 정할 수 있다지요 한 달 혹은 일 년, 아니면 몇 십 년 뒤일 수도 있다지요 당신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냅니다 도착 날짜는 그저 먼 훗날 당신에게 내 마음이 천천히 전해지길 원합니다 당신에게 내 마음이 천천히 전해지는 걸 오랫동안 지켜보길 원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수십 번, 수백 번의 후회가 나에게 왔다가고 어느 날 당신은 내가 쓴 편지 한통을 받겠지요 겉봉을 뜯고 접은 편지지를 꺼내 펼쳐 읽겠지요 그때 나는 지워진 어깨 너머 당신 뒤에 노을처럼 서서 편지를 읽겠습니다 편지가 걸어간 그 느린 걸음으로 내내 당신에게 걸어가 당신이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한 홉 한 홉 차올랐던 숨을 몰아 내쉬며 손을 내려놓을 즈음 편지 대신 그 앞에 내가 서 있겠습니다.
―계간『문학동네』(2011. 겨울호) |
통증
고영민
중국에는 편지를 천천히 전해주는
느림보 우체국이 있다지요
보내는 사람이 편지 도착 날짜를 정할 수 있다지요
한 달 혹은 일 년, 아니면 몇 십 년 뒤일 수도 있다지요
당신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냅니다
도착 날짜는 그저 먼 훗날
당신에게 내 마음이
천천히 전해지길 원합니다
당신에게 내 마음이 천천히 전해지는 걸
오랫동안 지켜보길 원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수십 번, 수백 번의 후회가 나에게 왔다가고
어느 날 당신은
내가 쓴 편지 한통을 받겠지요
겉봉을 뜯고 접은 편지지를 꺼내 펼쳐 읽겠지요
그때 나는 지워진 어깨 너머
당신 뒤에 노을처럼 서서
편지를 읽겠습니다
편지가 걸어간 그 느린 걸음으로
내내 당신에게 걸어가
당신이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한 홉 한 홉
차올랐던 숨을 몰아 내쉬며 손을 내려놓을 즈음
편지 대신 그 앞에
내가 서 있겠습니다.
―계간『문학동네』(2011. 겨울호)
-웹진 시인광장 선정『2012 올해의 좋은시 100選』(아인북스, 2012)
'시 편지·카톡·밴드 > 카톡 ♠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등/김길중 - 카톡 좋은 시 162 (0) | 2015.08.10 |
---|---|
달마의 뒤란 - 카톡 좋은 시 161 (0) | 2015.08.08 |
그리움/유치환 - 카톡 좋은 시 159 (0) | 2015.08.02 |
와온에서/나희덕 - 카톡 좋은 시 158 (0) | 2015.08.02 |
애월에서 보내는 편지/정영숙 - 카톡 좋은 시 - 157 (0) | 2015.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