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좋은 시 161 달마의 뒤란 김태정
어느 표류하는 영혼이 내생을 꿈꾸는 자궁을 찾아들 듯 떠도는 마음이 찾아든 곳은 해남군 송지하고도 달마산 아래
장춘이라는 지명이 그닥 낯설지 않은 것은 간장 된장이 우리 살아온 내력처럼 익어가는 윤씨 할머니댁 푸근한 뒤란 때문이리라
여덟 남매의 탯줄을 잘랐다는 방에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모처럼 나는 피곤한 몸을 부린다 할머니와 밥상을 마주하는 저녁은 길고 따뜻해 이 세상이 이 세상 같지 않고
개밥바라기별이 떴으니 누렁개도 밥 한술 줘야지 뒤란을 돌다 맑은 간장빛 같은 어둠에 나는 가만가만 장독소래기를 덮는다.
느리고 나직나직한 할머니의 말맛을 닮은 간장 된장들은 밤 사이 또 그만큼 맛이 익어가겠지
여덟 남매를 낳으셨다는 할머니 애기집만큼 헐거워진 뒤란에서 태아처럼 바깥세상을 꿈꾸는 태아처럼 웅크려 앉아 시간도 마음도 놓아버리고 웅크려 앉아 차랍차랍 누렁이 밥 먹는 소리 듣는
해남하고도 송지면 달마산 아래 늙고 헐거워져 편안한 윤씨댁 뒤란은 이 세상이 이 세상 같지 않고 오늘 밤이 오늘 밤 같지 않고 어제가 어제 같지 않고 내일이 내일 같지 않고 다만
개밥바라기 별이 뜨고 간장 된장이 익어가고 누렁이 밥 먹는 소리 천지에 꽉 들어차고
―시집『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창비, 2004) |
달마의 뒤란
김태정
어느 표류하는 영혼이
내생을 꿈꾸는 자궁을 찾아들 듯
떠도는 마음이 찾아든 곳은
해남군 송지하고도 달마산 아래
장춘이라는 지명이 그닥 낯설지 않은 것은
간장 된장이 우리 살아온 내력처럼 익어가는
윤씨 할머니댁 푸근한 뒤란 때문이리라
여덟 남매의 탯줄을 잘랐다는 방에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모처럼 나는
피곤한 몸을 부린다
할머니와 밥상을 마주하는 저녁은 길고 따뜻해
이 세상이 이 세상 같지 않고
개밥바라기별이 떴으니
누렁개도 밥 한술 줘야지 뒤란을 돌다
맑은 간장빛 같은 어둠에
나는 가만가만 장독소래기를 덮는다.
느리고 나직나직한 할머니의
말맛을 닮은 간장 된장들은 밤 사이
또 그만큼 맛이 익어가겠지
여덟 남매를 낳으셨다는 할머니
애기집만큼 헐거워진 뒤란에서
태아처럼
바깥세상을 꿈꾸는 태아처럼 웅크려 앉아
시간도 마음도 놓아버리고 웅크려 앉아
차랍차랍 누렁이 밥 먹는 소리 듣는
해남하고도 송지면 달마산 아래
늙고 헐거워져 편안한 윤씨댁 뒤란은
이 세상이 이 세상 같지 않고
오늘 밤이 오늘 밤 같지 않고
어제가 어제 같지 않고
내일이 내일 같지 않고 다만
개밥바라기 별이 뜨고
간장 된장이 익어가고
누렁이 밥 먹는 소리
천지에 꽉 들어차고
―시집『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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