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꽃
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시집『순간의 꽃』(문학동네, 2001)
몇 년도에 백담사를 갔는지 년도를 기억할 수 없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유배?를 왔다가 풀려나서 돌아간 후였다. 전직 대통령이 유배를 다녀간 후 백담사 올라가는 길이 좋아졌다고 했다. 어떤 이는 유려한 계곡을 다 망쳐놓았다고 했지만 그래서 그런지 작은 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백담사는 모두 다 아시다시피 만해 한용운님의 절로 인식이 돼 있었다. 이곳에서 그 유명한 시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로 시작되는 님의 침묵의 시집을 탈고했다고 하는데 설에 의하면 신흥사에서부터 백담사까지 따라온 한 여인이 있었다고도 한다. 그런데 만해와 호도 비슷한 일해라는 그 분이 일신적으로 운둔하면서 절에 대해 별 관심도 없는 일반인들에게까지 백담사는 더 유명한 사찰이 되었다.
짧은 시간 잠깐 머무르다 떠나온지라 어떤 건물이 있었고 무엇을 보았는지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 기억이 없다. 백담사가 내 기억에 아직 남아 있는 것 중 하나는 내설악 수렴동을 거쳐서 백담사 계곡까지 내려왔다는 물이었다. 수심교라는 다리 아래로 내려다보는 물이 얼마나 맑고 깨끗하던지 경내로 들어서는 마음마저 청정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에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바로 ‘그 꽃’ 이라는 시비였다. 제목도 없이 고은 시인 이름 밑에 쓰여진 석 줄의 시가 백담사 경내에서 본 다른 어떤 것보다 기억의 한자리를 맴돌고 있다. 기실 이 시는 짧은 시 모음집 시집 속에 있는 시로 따로 제목이 없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누군가에 의해 자연스럽게 ‘그 꽃‘이라는 제목이 붙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에서처럼 등산을 하다가 정상을 찍고 내려올 때 올라갈 때 못 본 꽃을 내려올 때 볼 때가 있다. 위치와 방향과 자세가 달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올라갈 때의 마음은 내려올 때처럼 여유롭거나 느긋하지 못하다. 그 꽃은 올라갈 때 없다가 내려올 때 누가 갖다놓은 것이 아니다. 올라갈 때도 분명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을 것이다. 다만 무심코 허둥대며 목적만을 의식하며 지나쳐 못 보았을 뿐이다. 우리는 너무 급하게 사느라 삶의 소중한 것들을 놓치며 살고 있는 아닐까 이 시를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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