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꽃무릇
이규리
저 꽃 이름이 뭐지?
한참 뒤 또 한 번
저 꽃 이름이 뭐지?
물어놓고서 그 대답 듣지 않을 땐 꼭 이름이 궁금했던 건 아닐 것이다
꽃에 홀려서 이름이 멀다
매혹에는 일정량 불운이 있어
당신이 그 앞에서 여러 번 같은 말만 한 것도 다른 생각조차 안 났기 때문일 것이다
아픈 몸이 오면 슬그머니 받쳐주는 성한 쪽이 있어
꽃은 꽃을 이루었을 터인데
이맘때 요절한 그 사람 생각
얼마나 먹먹했을까
당신은 짐짓 활짝 핀 고통을 제 안색에 숨기겠지만
숨이 차서, 어찌할 수 없어서, 일렁이는 마음 감추려 또 괜한 말을 하는 것
저 꽃 이름이 뭐지?
—시집『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문학동네, 2014)
어린 시절 꽃에 대한 관심이라곤 통 없었다. 그렇다고 꽃밭을 안 가꿔본 것은 아니다. 마당 한 구석에 울바자 대충 치고 채송화, 금송화, 코스모스, 국화, 해바라기 등을 키우면서 계절마다 꽃보기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추꽃 감꽃은 피는 줄도 몰랐다. 드러나지 않게 예쁘지 않아 눈에 잘 띄지 않은 탓도 있겠으나 꽃보다 열매의 식용에 대한 관심이 더 컸던 탓이다.
등산을 하면서 기르던 꽃이 아닌 야생화를 만나게 되었는데 꽃이 크면서 화려하지는 않으나 소박하고 볼수록 예쁜 꽃이 야생화였다. 시를 가까이 하면서 야생화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름을 통 알 수 없었다. 사진을 찍어서 야생화 카페에 올려 물어보면서 꽃 하나 하나에게 이름을 불러주었는데 문제는 다음해에 같은 아이를 만나면 또 이름을 잊어버린다는 것이었다.
상상화와 꽃무릇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잎과 꽃이 따로 피지만 엄연히 다른 꽃인데 꽃무릇도 상상화라고 알고 있었다. 상상화는 봄에 잎이 났다가 6~7월 잎이 진 후 분홍색의 꽃을 피우는데 반해 꽃무릇은 가을에 잎이 나 월동을 한 후 봄에 잎이 지고 추석을 전후로 붉을 꽃을 피운다. 잎이 있을 때 꽃이 없고 꽃이 있을 때 잎이 없음이 마치 남녀 사랑의 이별을 보는 듯 하여 여느 꽃보다 애틋해 보여 한번 더 눈길이 가기도 한다.. <!--[endif]-->
이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애틋하고 안타까운 석별, 이별을 통보하는 고별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작별... 약간의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모두 다 헤어짐에는 아픔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이별도 사별보다 뼈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누군가와 사별의 작별을 고해야 한다. 육친인 아버지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형제나 자매 친한 친구들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짐도 있을 것이다. 소중하고 거룩한 이름 앞에 우리는 너무도 먹먹해져서 한 말을 다시 하고 또 다시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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