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은 없다
백무산
고깃집 뒷마당은 도살장 앞마당이었다
고기 먹으러 갔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친구 따라갔다
구워먹는 데만 하루에 황소 서너 마리를 소비한다는
대형 고깃집 수백 명이 한꺼번에 파티를 열고
회식을 하고 건배를 하고 연중무휴
요란하고 벅적거리는 대궐 같은 집이다
그는 쇠를 자르고 기계를 분해하고
기름 먹이는 일을 하다 직장을 옮겨 우족을 자르고
뼈를 발라내고 피를 받아내는 일을 한다
소를 실은 차들과 고기를 실어 나르는
트럭들이 들락거리는 마당을 지나
전동문을 열고 들어서니 피를 뒤집어쓴
잘린 소 대가리가 거대한 탑을 이루고 있다
바닥은 피와 똥과 체액으로 질펀한 갯벌이다
더운 피의 증기가 뻑뻑한 한증막이다
하수구 냄새와 범벅이 된 살 비린내가 고체 같다
욕탕 같은 수조는 똥과 내장의 늪이다
뜯긴 살점이 사방에 튀고 벽은 온통 피 얼룩이다
컨베어 소리 기계톱 소리 갈고리 부딪는 소리
육절기 돌아가는 소리가 패널 벽에
왕왕 메아리 되어 울부짖는다
이곳에서 누군가는 지옥을 읽었다지만
지옥이 아니다
지옥과 닮지도 않았다
이곳은 천국의 부속건물이다
천국의 주방이다
우리가 괜찮은 노동을 하고
그럴듯한 세상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장만하는 곳이다
식당으로 돌아와 함께 떠들고 고기를 먹었다
맛이 있어서 불안했다
그러나 안도를 했다
지옥은 편입되고 없었다
ㅡ월간『유심』(2015년 9월호)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닭 잡는 것은 많이 보았을 것이다. 닭 뿐 아니라 염소나 돼지 개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소 잡는 것을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가는 길 철길 너머 작은 언덕 위에 도살장이 있었다. 등에 짊어진 고기가 무섭게 보였는지 무섭게 보이는 아저씨들이 잡은 소고기를 어깨에 메고 내려오는 것을 가끔 본 적은 있으나 소를 직접 잡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어느 날 하굣길 언덕길을 에둘러 내려오다가 도살장 안으로 소를 끌고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평행봉처럼 생긴 나무틀이 도살장 문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는데 그 사이로 소를 끌고 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안에 있던 한 사람이 순식간에 소의 정수리를 때렸고 소는 그 자리에서 픽 쓰러지는 것이었다. 엄청 큰 해머를 쓸 줄 알았는데 못 박는데 쓰는 것처럼 작은 망치였다.
어느 나라인지는 잊어버렸지만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한 나라의 마을 축제를 보여주고 있었다. 축제의 날에 소를 사 놓으면 백정? 들이 마을을 돌면서 소를 잡아주는데 그 집은 손님이 많이 와서 그런지 소 세 마리를 사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소를 잡는 사람들이 마당을 들어오고 순서가 뒤로 미뤄진 다른 소에게는 도살 장면이 보이지 않게 한쪽 구석으로 옮겨 놓았다. 그러나 옮겨진 소도 이미 자신이 죽을 운명을 알고 있는지 겁에 질려 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시는 고기를 먹으러 갔다가 친구가 일하고 있는 도살장의 모습을 보게 된 장면들이 있는 그대로 날것으로 그려져 있다. 피와 똥과 체액으로 질펀한 갯벌 같은 바닥에 잘려진 소대가리가 탑처럼 쌓여 있는 것이 끔찍하기도 하다. 어떤 이에게는 지옥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 지옥 같은 곳에서 화자의 친구처럼 어떤 사람들은 밥벌이를 하고 있다. 이런 곳이 누구에게는 소중한 직업이라는 생각을 하면 지옥 같은 곳에서 먹는 고기가 맛이 있어서 불안한 맛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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