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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 관한 시 - 송경동/홍일표/김중일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6. 1. 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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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인양하라

 

송경동

 

 

어디선가 지금도 문을 긁는 소리

두드리는 소리 외치는 소리 허우적이는 소리

, 거대한 악마의 입이 사람들을 삼키는 소리

지금도 어느 창가에서

우릴 바라보고 있는 차가운 얼굴들

살려 줘요. 엄마, 아빠

이 죽음의 선실에서 나가게 해 줘요

1년이 지나도 올라오지 못하는

고통의 소리들, 진실의 소리들

도대체 세월호는 어디에 가라앉아 있는가

 

세월호가 맹골수도에

침몰해 있다는 말도 이젠 거짓말 같다

세월호는 이미 국정원 어느 분실 깊숙이 결박당해 있고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과 함께

청와대 지하 벙커에 은닉되어 있는 것 아닌가

감사원의 감사 기록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검찰과

법원의 공판 기록을 다 뒤져 볼수록

오히려 더 흐릿해져 가는

 

도대체 세월호는 어디에 가라앉아 있는 것일까

국민들과 유가족들에게

국회의 고유 입법 권한에 접근하지 말라는

의원 나리들의 엄포 아래

700조 원 넘는 사내유보금을 두고도

사람들이 돈주머니를 열지 않으니

세월호를 빨리 잊으라는 재벌들의 압력 속에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교통사고

근원을 파헤치지 않는

언론사들의 적당한 기사들 아래

진단만 하고 뛰어들지는 않는

지식인들의 안전한 서재 아래

다시 가만히 있으라는

경찰의 노란 질서유지선 아래

우리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죽비가 되고

튼튼한 동아줄로 엮여

이 사회의 불의와 기만을 내려치고

세월호의 진실을 우리 스스로 인양하지 못하는

한국사회운동의 더딤과 무능함 아래

 

그렇게 가라앉아 있는 것은

세월호가 아니라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저 아홉 명의 실종자가 아니라

오늘도 끝 간 데 없이 가라앉는 유가족들의 슬픔의 심해가 아니라

이 사회와 국가 전체가 아닌가

변한 것 하나 없이 어떤 미래도 희망도 없이

오늘도 우리 모두의 끊이지 않는 참사와 재난을 향해

눈먼 항로를 향해 가고 있는

이 탈선의 국가 아닌가

 

그런 나와 우리와 이 사회를 인양하지 않고

어떤 세월호를 인양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의 비겁과 나태와 패배감을 인양해

새로운 역사의 갑판 위로 뛰어오르지 않고

어떻게 세월호를 인양할 수 있을까

도대체 저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대한민국호 선장과 선원들을 그냥 두고

어떻게 세월호를 인양할 수 있을까

 

세월호를 인양하라

우리 모두의 정당한 분노를

우리 모두의 사랑을 인양하라

우리 모두의 존엄을 인양하라

기울어 가는 묻혀져 가는

이 시대의 진실을 인양하라

새로운 국가를

새로운 시대를

새로운 정의를 인양하라

 

 

 

ㅡ『무크 파란(201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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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귀

 

홍일표

 

 

  사라진 노래가 하늘 한 바퀴 돌고 와 어깨에 앉아 있다 잠자리는 노래가 되지 않아서 혀가 굳고 검은 가방 안에는 눈감지 못한 태양이 있다 가방을 열면 우르르 쏟아지는 진흙투성이 밤이 있다

 

  남몰래 입 없는 말들이 소용돌이치는 심해에 들어갔다 나온다 젖는다 아랫도리가 가슴팍이 다 젖어 나는 내가 없는 이름이 된다 이름 안에 숨어서 연명한다 이미 죽었지만 죽지 못하는 노래라고 말하자 너무 많은 슬픔은 슬픔이 아니라고 말하자

 

  용서하세요 저는 돌아가지 못합니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어서 이곳엔 열여덟 살 밤만 있습니다

 

  귀는 마지막까지 살아서 등대처럼 깜박인다 종일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눈먼 바다를 뒤집어본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는 사이 아직도 죽지 못하고 물고기 떼처럼 먼 곳에서 돌아오는 보름달 같은 귀에 운동장을 밀어 넣고 교실을 밀어 넣고 스마트폰을 밀어 넣는다 가득가득 귀가 범람한다 한 마디만 마지막 한 마디만 귀를 잡고 간청한다

 

나는 고작 소라껍질이나 잡고 여기 서 있으니 울고 있던 수천의 귀들이 부서져 하얗게 흩날리고 있으니

 

 

 

웹진시인광장(20151월호)

2016 웹진 시인광장6회 시작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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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썹이라는 가장자리

     2015

 

  김중일

 

 

  눈동자는 일년간 내린 눈물에 다 잠겼지만, 눈썹은 여전히 성긴 이엉처럼 눈동자 위에 얹혀 있다. 집 너머의 모래 너머의 파도 너머의 뒤집힌 봄. 해변으로 밀려오는 파도는 바람의 눈썹이다. 바람은 지구의 눈썹이다. 못 잊을 기억은 모래 한 알 물 한 방울까지 다 밀려온다. 계속 밀려온다. 쉼 없이 밀려온다. 얼굴 위로 밀려온다. 눈썹은 감정의 너울이 가 닿을 수 있는 끝. 일렁이는 눈썹은 표정의 끝으로 밀려간다. 눈썹은 몸의 가장자리다. 매 순간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울음이 울컥 모두 눈썹으로 밀려간다. 눈썹을 가리는 밤. 세상에 비도 오는데, 눈썹도 없는 생물들을 생각하는 밤. 얼마나 뜬 눈으로 있으면 눈썹이 다 지워지는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밤. 온몸에 주운 눈썹을 매단 편백나무가 바람을 뒤흔든다. 나무에 기대 앉아 다 같이 뜬 눈으로 눈썹을 만지는 시간이다.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의 털과 다르게 눈썹은 몸의 가장자리인 얼굴에, 얼굴의 변두리에 난다. 눈썹은 사계절 모두의 얼굴에 떠 있는 구름이다. 작은 영혼의 구름이다. 비구름처럼 낀 눈썹 아래, 새까만 비웅덩이처럼 고인 눈동자 속에, 고인의 눈동자로부터 되돌아 나가는 길은 이미 다 잠겼다. 저기 저 멀리 고인의 눈썹이 누가 훅 분 홀씨처럼 바람타고 날아가는 게 보이는가? 심해어처럼 더 깊은 해저로 잠수해 들어가는 게 보이는가? 미안하다. 안되겠다. 먼 길 간 눈썹을 다시 붙들어 올 수 없다. 얼굴로 다시 데려와 앉힐 수 없다. 짝 잃은 눈썹 한 짝처럼 방 가장자리에 모로 누워 뒤척이는 사람. 방 한가운데가 미망의 동공처럼 검고 깊다. 눈물이 다 떨어지고 나자 눈썹이 한올 한올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 사람의 가장자리에는 누가 심은 편백나무가 한 그루.

  그 위에 앉아 가만히 눈시울을 핥는 별이 한 마리.

 

월간현대시학(201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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