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봄날은 간다/최금진- 심!/박제영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6. 2. 23. 22:22
728x90

봄날은 간다

 

최금진

 

 

사슴농장에 갔었네

혈색 좋은 사과나무 아래서

할아버지는 그중 튼튼한 놈을 돈 주고 샀네

순한 잇몸을 드러내며 사슴은 웃고 있었네

봄이 가고 있어요, 농장주인의 붉은 빰은

길들여진 친절함을 연방 씰룩거리고 있었네

할아버지는 사슴의 엉덩이를 치며 흰 틀니를 번뜩였네

내 너를 마시고 回春할 것이니

먼저 온 사람들 너댓은 빨대처럼 생긴 주둥이를

컵에 박고 한잔씩 벌겋게 들이키고 있었네

사과나무꽃 그늘이 사람들 몸속에 옮겨 앉았네

쭉 들이켜세요, 사슴은 누워 꿈을 꾸는 듯했네

사람들 두상은 모두 말처럼 길쭉해서 어떤 악의도 없었네

누군가 입가를 문질러 닦을 때마다

꽃잎이 묻어났네, 정말 봄날이 가는 동안

뿔 잘리고 유리처럼 투명해진 사슴의 머리통에

사과나무 가지들이 대신 걸리고

할아버지 얼굴은 통통하게 피가 올라 출렁거렸네

늙은 돼지 몇마리를 몰고 나와 배웅하는 농장주인과

순록떼처럼 킁킁 웃으며 돌아가는 사람들 뒤

사과꽃잎에 핏물자국 번지며 봄날이 가고 있었네

 

    

 

시집새들의 역사.창비, 2007)

 

      

  심!


  박제영

 

 

   KLS는 당분간 내 밥줄이므로 당분간 저들이 내 목을 쥐고 흔들면 흔드는 대로 흔들려야 하므로 오전 골프를 마치고 예약한 사슴목장을 찾았다 "박형, 내가 전국 다 가봤는데 이 집 엘크가 최고야 저 시커먼 불알을 봐 엄청나잖아 오늘은 저 놈으로 하자구" 마취된 숫사슴의 뿔 밑둥에 고무줄을 단단히 감고 능숙한 솜씨로 톱질을 하는 주인 남자, 순식간에 뿔이 잘리고 고무줄을 풀자 솟구치는 붉은 피 "워메 진국이구만, 한 잔씩 돌리지" "뜨뜬뜨끈한 게 아랫도리에서 벌써 신호가 오는데" " 박형 뭐해 빨리 마시라구 사내란 말이여 모름지기 좆심으로 사는 거 아니겠어 우린 말이여 좆심 없는 놈한텐 십 원도 안 빌려줘" 까짓 거 눈 딱 감고 들이켰다

      

   화장실은 사육장 바로 옆에 있었는데, 마취 풀린 녀석이 비틀거리고 있었는데, 암컷들 무리 속으로 들어가다 말고 잠시 눈을 마주쳤는데, 그날 밤 아내와 그짓을 하는데 도무지 심! 이 서질 않는 거였다

 

 

 

시집뜻밖에.(애지,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