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좋은 시 237 서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정본 윤동주 전집』. 문학과지성사. 2004) |
서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 『정본 윤동주 전집』. 문학과지성사. 2004)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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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이시영
어서 오라 그리운 얼굴
산 넘고 물 건너 발 디디러 간 사람아
댓잎만 살랑여도 너 기다리는 얼굴들
봉창 열고 슬픈 눈동자를 태우는데
이 밤이 새기 전에 땅을 울리며 오라
어서 어머님의 긴 이야기를 듣자
(『만월』. 창작과비평사. 1976)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일간『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86 (조선일보 연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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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이성복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 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 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일간『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1』(조선일보 연재, 2008)
―신현림 엮음『딸아,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걷는나무,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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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고은
해가 진다
사랑해야겠다
사랑해야겠다 사랑해야겠다
너를 사랑해야겠다
세상의 낮과 밤 배고프며 너를 사랑해야겠다
―연시집『상화 시편: 행성의 사랑』(창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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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이정록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시집『벌레의 집은 아늑하다』(문학동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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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序詩)
나희덕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국제신문』(아침의 시, 20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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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序詩)
강은교
눈송이들이 뛰어온다
뛰어오는 눈송이들을 안개가 껴안는다
여기저기서 출렁이는 너의 이름
.........이름들
뜰에는 오늘 눈송이들이 가득하다
흰 구름 뿌리들이 가득하다
―시집『시간은 주머니에 은뱇별 하나 넣고 다녔다』(문학사상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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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이하석
우리가 갈 곳을 지우며
안개가 검게 흰 진창 위로 피어오른다.
먼 데로 도주하는 마음이
돌아보는 밤.
꼭두새벽에 돌아온다.
진 데를 빠져나와 비로소 잠 밖으로 몸을 털 대
우리의 길을 지우는 찬밤의 흰 꼬리가
아침해가 내린 그물에 휘감기는 게 보인다.
―시집『우리 낯선 사람들』(세계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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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김정환
이제는 너를 향한 절규 아니라
이제는 목전의 전율의
획일적 이빨 아니라
이제는 울부짖는 환호하는
발산 아니라 웃는 죽음의 입 아니라 해방 아니라
너는 네가 아니라
내 고막에 묻은 작년 매미 울음의
전면적, 거울 아니라
나의 몸 드러낼 뿐 아니라, 연주가 작곡뿐 아니라
음악의 몸일 때
피아노를 치지 않고 피아노가 치는 것보다 더 들어와 있는 내 귀로 들어오지 않고 내 귀가 들어오는 것보다 더 들어와 있는
너는 나의
연주다.
민주주의여.
―시집『거푸집 연주』(창작과비평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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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고정희
제 삶의 무게 지고 산을 오른다.
더는 오를 수 없는 봉우리에 주저앉아
철철 샘솟는 땀을 씻으면, 거기
내 삶의 무게 받아
능선에 푸르게 걸어 주네, 산
이승의 서러움 지고 산을 오르다
열두 봉이 솟아 있는 서러움에 기대어
제 키만한 서러움 벗으면, 거기
내 서러움 짐 받아
열두 계곡 맑은 물로 흩어 주네, 산산
쓸쓸한 나날들 지고 산에 오르다
산꽃 들꽃 어지러운 능선과 마주쳐
네 생애만한 쓸쓸함 묻으면, 거기
내 쓸쓸한 짐 받아
부드럽고 융융한 품 만들어 주네, 산산산
저 역사의 물레에 혁명의 길을 잣듯
사람은 손잡아 서로 사랑의 길을 잣는 것일까
다시 넘어가야 할 산길에 서서
뼛속까지 사무치는 그대 생각에 울면, 거기
내 사랑의 눈물 받아
눈부신 철쭉꽃밭 열어주네, 산, 산, 산
―고정희 지음『고정희 시전집 2』(또하나의문화,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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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서시(國土序詩)
조태일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맹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닮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일이다
(『국토』. 창작과비평사. 1975)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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