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첫 번째 종교/김종연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6. 3. 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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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종교

 

   김종연

 

 

   나의 사랑은 단년생이지만 다년생의 슬픔을 거느리고 있다 이 세상은 식물이 울기엔 너무 소란스럽기에 나는 짐승으로 살아 있다

 

   내게도 뼈가 있지만 섞이는 건 살 뿐이다 인간은 잘못 태어났다 인간은 뼈가 살을 감싸도록 태어났어야 했다 살아 있는 것이 위험하다  

 

   더 이상 볼 것도 느낄 것도 없는 이국의 폐허를 보며 나는 폐허의 윤곽이 매번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내 몸속에 든 폐허는 황금기를 지나고 있었다

 

   잘 부흥되지 않는 삶이었다 사람들은 내 몸을 밟고 다니며 지난 시대의 양식과 건축의 번영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자식과의 대화를 포기했다

 

   유실수는 종교 없이도 믿음을 키운다 나는 그 열매를 먹고 종교를 뱉어냈다 이제 그 자리에서 나무가 자라도 나의 믿음과는 무관하다

 

   감옥이 되지 못하는 몸에 굳이 와 갇혀 있는 신 때문에 내 생일은 휴일이 되지 못했다 대신 나는 그와 함께 생일 초를 불고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생일을 보낸다

이렇게 울다가도 웃긴 생각이 나면 웃게 된다

    

 

 

계간문학 · (2015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