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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다쳐 거의 2년 정도 산을 못 다니다가 2년을 또 혼자서 외롭게 홀로 산을 다닌 적이 있었다. 혼자 산행을 하다보면 의외로 혼자 산행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다. 혼자 산행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우선 홀가분하다. 약속도 시간 제약도 없으니 코스 변경도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발길 닿는 대로 갈 수도 있다. 또 하나 좋은 점은 나뭇잎 흔들리는 바람 소리, 여러 새가 내는 각양각색의 소리, 큰돌 작은 돌에 부딪쳐 골짜기의 물소리마다 음의 고저와 장단이 있고 꽃이 피고 낙엽이 떨어지는 장면도 유심히 바라볼 수가 있다. 그 중에 또 하나가 있다면 산행하는 다른 사람들의 대화가 들려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날도 삼각산 대동문 칼바위 구천폭포 아카데미하우스 방향으로 하산을 하는 길이었다. 앞에 오십 중반쯤 돼 보이는 여자 두 분이 이야기가 바람을 타고 뒤로 전해져 저절로 들어온다. 연속극에서도 자주 소재로 등장하는 재산 상속의 문제였다. 가까운 친구의 아들 이야기를 하면서 사업하는 자식을 위해 집을 담보라 대출을 하느냐 팔아서 주느냐는 것이었다. 둘의 대화는 안 된다는 쪽으로 결론을 난다. 하지만 만약 당사자라면 어찌할까.
우리나라처럼 가족 연대가 끈끈한 유교문화권에서 어버이와 자식은 한 몸이라 막상 내게 닥치면 어떻게든 도움을 주는 것이 부모로서 마음이 편하다. 아버지의 생애를 소주병에 비유한 공광규 시인의 시 소주병은 자식에게 다 따라주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우리네 아버지의 헐렁한 모습이다. 반 병쯤 남겨두고 노후를 대비하여야할 텐데 뻔히 알면서도 그러지를 못하고 다 따라주어 빈병만 남았다. 자신의 처지를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하고 밤에 잠도 못 자며 남몰래 우는 아버지의 흐느낌을 자식들은 모를 것이다.
소주병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ㅡ시집『소주병』(실천문학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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