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편지·카톡·밴드/카톡 ♠ 좋은시

봅볕은 두드리다/고명자 -카톡 좋은 시 275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6. 4. 20. 09:51
728x90




                        

                      카톡 좋은 시 275



   봄볕을 두드리다/고명자

 

   춘삼월 달력처럼 담벼락에 붙어

   팬지나 선인장 등을 파는 남자가 있다

   손바닥만한 화분을 이리저리 옮겨 놓으며

   볕이 잘 드는 쪽으로 생을 옮겨보는 남자가 있다

   흙 한줌에 용케 뿌리를 내리고

   소꿉놀이에 깊이 빠진 어설픈 중년

   빳빳한 새 봄으로 거슬러 주기도하면서

   봄볕 만지작거리다 그냥 가도 뭐라 말하지 않는다

   꽃 따위나 사랑을 하다가

   햇살을 등지고 앉아 깜박 졸던 사이였는지 모른다

   유리창에는 매화를 뜯어 붙이고

   모란 문양을 떠 가난도 꽃이라며서

   개다리소반에 김치찌개 한 냄비 소주 반 병

   헐벗은 행복을 훌훌 떠먹다

   난전의 꽃, 다행이다 그늘 한 뼘은 깔고 앉았다

   등줄기 꼿꼿하던 꿈

   몇 번의 내리막과 커브를 돌다 둥그러진 남자

   더 이상 물러 날 곳이 없다는 듯

   국방색 어깨를 담벼락에 척 걸쳐놓고서

 

 

   ―시집술병들의 묘지(서정시학, 2013)



 

 


  봄볕을 두드리다


  고명자

 

  춘삼월 달력처럼 담벼락에 붙어

  팬지나 선인장 등을 파는 남자가 있다

  손바닥만한 화분을 이리저리 옮겨 놓으며

  볕이 잘 드는 쪽으로 생을 옮겨보는 남자가 있다

  흙 한줌에 용케 뿌리를 내리고

  소꿉놀이에 깊이 빠진 어설픈 중년

  빳빳한 새 봄으로 거슬러 주기도하면서

  봄볕 만지작거리다 그냥 가도 뭐라 말하지 않는다

  꽃 따위나 사랑을 하다가

  햇살을 등지고 앉아 깜박 졸던 사이였는지 모른다

  유리창에는 매화를 뜯어 붙이고

  모란 문양을 떠 가난도 꽃이라며서

  개다리소반에 김치찌개 한 냄비 소주 반 병

  헐벗은 행복을 훌훌 떠먹다

  난전의 꽃, 다행이다 그늘 한 뼘은 깔고 앉았다

  등줄기 꼿꼿하던 꿈

  몇 번의 내리막과 커브를 돌다 둥그러진 남자

  더 이상 물러 날 곳이 없다는 듯

  국방색 어깨를 담벼락에 척 걸쳐놓고서

    

 

 

  ―시집술병들의 묘지(서정시학,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