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시 공부

비 냄새/유안나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6. 6. 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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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냄새

 

유안나

  

 

저수지가 여자를 밀어내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엎어진 여자를 누군가 바로 누이자 귀와 코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그때 잠깐 구름 사이로 햇빛이 넘어왔다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어두운 햇살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듯

눈과 이마를 가렸다

누군가와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지

입술을 반쯤 열고 흰 치아가 드러났다

흰 블라우스 사이로 드러난 배가 가슴보다 불룩했다

속이 허할 때 꾸는 꿈이 커지고 부풀었으리라

 

두근거리며 부풀었을 꿈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에 모아지는 동안 수많은 말이 가지처럼 출렁거렸다

 

귀와 귀를 건너가는 동안 누구는 그것이 사인(死因)이라 하였고

누구는 또 다른 의혹을 바람처럼 무럭무럭 키웠다   

 

누군가 여자의 긴 머리카락을 젖히자

오뚝한 콧날 위로 다 감지 못한 초점 잃은 눈이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점점 자라는 의혹이 재미있다는 듯 동공은 짙게 흘러가는 구름을 깔고

 

시신이 수습되고 소나기가 한차례 퍼부었다

저수지에서 수많은 혀가 거세게 돋아났다

 

 

 

계간애지(2012년 여름호) - 신인상 등단작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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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냄새

 

유안나

    

 

저수지가 여자를 밀어내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엎어진 여자를 누군가 바로 누이자 귀와 코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그때 잠깐 구름 사이로 햇빛이 넘어왔다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무상으로 잉태된 눈부신 햇살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듯 눈과 이마를 가렸다

누군가와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지 입술을 반쯤 열고 흰 치아가 드러났다

흰빛의 블라우스 맨 밑의 단추를 채우지 못하여 속옷이 드러난 배가 가슴보다 불룩했다

속이 허할 때 꾸는 꿈이 고였으리라


두근거리며 부풀렸던 꿈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에 모아지는 동안 수많은 말이 가지처럼 출렁거렸다


귀와 귀를 건너가는 동안 누구는 그것이 사인이라 하였고

누구는 또 다른 의혹을 바람처럼 무럭무럭 키웠다   

 

누군가 여자의 긴 머리카락을 젖이자 오뚝한 콧날 위로 다 감지 못한 초점 잃은 눈이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점점 자라는 의혹이 재미있다는 듯 동공의 배경에는 짙게 흘러가는 구름을 깔고

 

시신이 수습되고 소나기가 한차례 퍼부었다

저수지에서 수많은 혀가 거세게 돋아났다

    


 


계간애지(2012년 여름호) - 신인상 등단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