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최문자
알고 있었니
어머니는 무릎에서 흘러내린 아이라는 거
내 불행한 페이지에 서서 죄 없이 벌벌 떠는 애인이라는 거
저만치 뒤 따라 오는 칭얼거리는 막내라는 거
앰블런스를 타고 나의 대륙을 떠나가던 탈옥수라는 거
내 몸 어디엔가 빈방에 밤새 서있는 여자
지익 성냥불을 일으켜 촛불을 켜주고 싶은 사람
누군가
내 몸 구석에 서서
내 마음 한권 꺼내 가만가만 읽는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가지고 있던 탯줄
그 타는 목마름으로 읽는다
읽을 수 없는 곳이 자꾸 생겨나자 몸 밖으로 나가는 어머니
알고 있었니
기도 하는 손을 가진 내 안의 양 한 마리
털이 굽슬굽슬한 양떼구름이 된 어머니
ㅡ계간『포엠포엠』(2013. 여름)
-----------------------
어머니
최문자
알고 있었니
어머니는 무릎에서 흘러내린 아이라는 거
내 불행한 페이지에 서서 죄 없이 벌벌 떠는 애인이라는 거
저만치 뒤따라오는 칭얼거리는 막내라는 거
앰뷸런스를 타고 나의 대륙을 떠나가던 탈옥수라는 거
내 몸 어디엔가 빈방에 밤새 서 있는 여자
지익 성냥불을 일으켜 촛불을 켜주고 싶은 사람
어머니가 구석에 가만히 서서
나를 꺼내 읽는다
자주 마음이 바뀌는 낯선 부분
읽을 수 없는 곳이 자꾸 생겨나자 몸밖으로 나간 어머니
알고 있었니
기도하는 손을 가진 내 안의 양 한 마리
―시집『파의 목소리』(문학동네, 2015)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 > 시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 냄새/유안나 (0) | 2016.06.03 |
---|---|
봄볕을 두드리다/고명자 (0) | 2016.04.20 |
이름을 지운다/허형만 (0) | 2015.12.01 |
폐광촌 언덕에서 /정일남 (0) | 2015.12.01 |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 이규리 (0) | 2015.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