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시 공부

폐광촌 언덕에서 /정일남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5. 12. 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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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촌 언덕에서

 

정일남

 

 

1970

 

 

반공포로 윤달주는 선산부

머슴 강민석은 후산부

전과자 배남준은 착암기 운전공

사상범 김민수는 유탄공

축첩 공무원 정연석은 갱목 운반공

나는 다이너마이트를 메고 다닌 발파공이었다 

 

이들은 나의 생사를 같이한 길벗들이었지

캄캄한 막장에서 해바라기와 친해보지 못하고 탄에 묻혀 갔지

심장이 불덩이처럼 뜨겁던 이립의 나이에

 

모두 목돈 모아 살아보자고 했다

꽃나무 아래 햇빛 길을 가자고 했다

반공 포로의 아들은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머슴의 아들은 의과대학에 들어갔다고 자랑했다

그렇게 희망으로 부풀던 막장

 

나는 영세한 문장을 매만지다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렸다

 

죽은 그들의 공동묘지에 폐가 망가진 낮달이 뜬다

소복한 여인이 묘지에 와서 잡초를 뽑는다

미망인의 지난날을 물어보지 못했다

어디서 어떻게 사느냐고

  

 

 

계간문예연구(201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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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촌 언덕에서 

―1970

 

정일남 

 

 

 

반공포로 윤달주는 선산부

머슴 강민석은 후산부

전과자 배남준은 착암기 운전공

사상범 김민수는 유탄공

축첩 공무원 정연석은 갱목 운반공

나는 다이너마이트를 메고 다닌 발파공이었다

 

이들은 나의 생사를 같이한 길벗들이었지

심장이 불덩이처럼 뜨겁던 이립의 나이에

 

모두 목돈 모아 살아보자고 했다

꽃나무 아래 햇빛 길을 가자고 했다

반공 포로의 아들은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머슴의 아들은 의과대학에 들어갔다고 자랑했다

그렇게 희망으로 부풀던 막장

 

죽은 그들의 공동묘지에 폐가 망가진 낮달이 뜬다

소복한 여인이 묘지에 와서 잡초를 뽑는다

미망인의 지난날을 물어보지 못했다

 

 

시집봄들에서(푸른사상, 201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