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시 공부

봄볕을 두드리다/고명자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6. 4. 20.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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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을 두드리다


고명자   

 

 

춘삼월 달력처럼 담벼락에 붙어

팬지나 선인장 등을 파는 남자가 있다

손바닥만한 화분을 이리저리 옮겨 놓으며

볕이 잘 드는 쪽으로 생을 옮겨보는 남자가 있다

흙 한줌에 용케 뿌리를 내리고

소꿉놀이에 깊이 빠진 어설픈 중년

빳빳한 새 봄으로 거슬러 주기도하면서

봄볕 만지작거리다 그냥 가도 뭐라 말하지 않는다

꽃 따위나 사랑을 하다가

햇살을 등지고 앉아 깜박 졸던 사이였는지 모른다

유리창에는 매화를 뜯어 붙이고

모란 문양을 떠 가난도 꽃이라며서

개다리소반에 김치찌개 한 냄비 소주 반 병

헐벗은 행복을 훌훌 떠먹다

난전의 꽃, 다행이다 그늘 한 뼘은 깔고 앉았다

등줄기 꼿꼿하던 꿈

몇 번의 내리막과 커브를 돌다 둥그러진 남자

더 이상 물러 날 곳이 없다는 듯

국방색 어깨를 담벼락에 척 걸쳐놓고서   

 

 

 

시집술병들의 묘지(서정시학,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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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을 두드리다


고명자   

 

 

춘삼월 달력처럼 담벼락에 붙어

팬지나 선인장 등을 파는 남자가 있다

손바닥만한 화분을 이리저리 옮겨 놓으며

볕이 잘 드는 쪽으로 생을 옮겨보는 남자가 있다

흙 한줌에 용케 뿌리를 내리고

소꿉놀이에 깊이 빠진 어설픈 중년

빳빳한 새 봄으로 거슬러 주기도하면서

봄볕 만지작거리다 그냥 가도 뭐라 말하지 않는다

꽃 따위나 사랑을 하다가

햇살을 등지고 앉아 깜박 졸던 사이였는지 모른다

유리창에는 매화를 뜯어 붙이고

모란 문양을 떠 가난을 땜질하면서

개다리소반에 김치찌개 한 냄비 소주 반 병

헐벗은 행복을 훌훌 떠먹다

난전의 꽃, 다행이다 그늘 한 뼘은 깔고 앉았다

등줄기 꼿꼿하던 꿈

몇 번의 내리막과 커브를 돌다 둥그러진 남자

더 이상 물러 날 곳이 없다는 듯

국방색 어깨를 담벼락에 척 걸쳐놓고서

    


 

계간시와정신(2005. 봄호 신인당선작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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