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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거미줄 / 손택수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6. 6. 1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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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거미줄

나민애 문학평론가

입력 2016-06-10 03:00:00 수정 2016-06-10 03:00:00


거미줄 ― 손택수(1970∼ ) 


어미 거미와 새끼 거미를 몇 킬로미터쯤 떨어뜨려놓고
새끼를 건드리면 움찔 
어미의 몸이 경련을 일으킨다는 이야기,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내게도 있어 
수천 킬로미터 밖까지 무선으로 이어져 있어 
한밤에 전화가 왔다 
어디 아픈 데는 없느냐고,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매사에 조신하며 살라고 
지구를 반바퀴 돌고 와서도 끊어지지 않고 끈끈한 줄 하나

  
사랑에 빠진 어린 연인들을 만나면 이야기해 주고 싶다. 아무리 화가 난대도 홧김에 “우리 헤어져!” 이런 말은 하지 말라고. 화가 났다는 표시로 ‘헤어지자’고 한 것뿐인데, 말하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이별의 가능성이 끼어들게 된다. 한 번도 이별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연인은 이별을 상상해 보게 된다. 말을 하면, 정말 그렇게 될 것만 같다. 말은 참 힘이 세다. 

요즘같이 힘든 시절에는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밥그릇을 놓고 다툰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말한다. 부모는 자식이 서운하고, 자식은 부모가 야속하다고 한다. 어딘가에 살고 있는 김모 씨가 자식과 돈 문제로 매일 다툰다고도 한다. 이 말을 들으면 덩달아 다른 부모들의 마음도 팍팍해진다. 다른 자식들의 마음도 답답해진다.

자식은 부모에게, 부모는 자식에게 부담스러운 사람일까. 말이 사랑스러운 사람을 부담스럽게 만드니까, 반대로 말을 통해 사랑스러운 사람을 더욱 사랑스럽게 만들어 보자.

손택수 시인의 ‘거미줄’에서 시인은 한국에서 멀리, 지구 반대편에 와 있다. 반대편이니까 시인이 있는 곳이 밤이면 한국은 낮일 것이다. 시인은 한참 자고 있었는데 막 일어나신 한국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밤중에 받는 전화는 보통 무섭거나 슬프기 쉽다. 아들은 퍼뜩 놀라서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간밤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전화했다고 한다. 어이없을 법도 하지만 아들은 화내지 않았다. 그 대신, 아름다운 시를 썼다. 고마워서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고 이 시를 썼다. 어머니가 사소한 징조에도 아들을 걱정하는 것은 아들이 보물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들은 자신을 보물로 보는 어머니를 통해 정말로 보물 같은 사람이 된다.  

이런 어머니들은 유명하지 않지만 다행히도 아주 많다. 아주 많은 어머니들에 대해서 많은 전문가들이 말해주지 않으니까 대신 이 시를 읽을 필요가 있다. 돈이 아닌 마음과 마음이 끈으로 맺어져 있어서 가족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