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 「키스」
김기택, 「키스」
처음 네 입술이 열리고 내 혀가 네 입에 달리는 순간
혀만 남고 내 몸이 다 녹아버리는 순간
내 안에 들어온 혀가 식도를 지나 발가락 끝에 닿는 순간
열 개의 발가락이 한꺼번에 발기하는 순간
눈 달린 촉감이 살갗에 오톨도톨 돋아 오르는 순간
여태껏 내 안에 두고도 몰랐던 살을 처음 발견하는 순간
뜨거움과 질척거림과 스며듦이 나의 전부인 순간
두 몸이 하나의 살갗으로 덮여 있는 순간
두 몸이 하나의 살이 되어 서로 구분되지 않는 순간
네가 나의 심장으로 펄떡펄떡 뛰는 순간
내가 너의 허파로 숨 쉬는 순간
내 배안에서 네가 발길질을 하는 순간
아직 다 태어나지 못한 내가 조금 더 태어나는 순간
▶ 시_ 김기택 – 1957년 경기도 안양시에서 태어났다.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가뭄」과 「꼽추」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소』, 『껌』, 『갈라진다 갈라진다』 등이 있다.
▶ 낭독_ 서윤선 – 성우. 연극 ‘백치, 백지’, 영화 ‘줌 피씨 월드’, 애니메이션 ‘ 명탐장 코난’ 등에 출연.
배달하며
일찍이 한국시는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을 안고 있다. 만해(萬海)가 「님의 침묵」에서 노래한 ‘키쓰’는 견성(見性)의 찰나, 공(空)이 존재와 접촉하는 순간 등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그보다 그냥 사랑하는 이와의 사랑과 이별을 먼저 읽어야 한다.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에도 “붉은 키쓰”가 나온다.
‘키쓰’는 관능(官能) 중에서도 감각적인 부분, 그 중에서도 촉각 미각이 총동원된 시이다. 크림트의 명화 “키쓰”를 넘어, 감각(sense)을 넘어, 거의 절정(orgasm)에 가까운 묘사이다. 흔하고 천하지 않은 시어(詩語)로 이만큼 황홀한 ‘키쓰’를 묘사한 시는 흔치 않다. 소통이 그리운 시대, 이런 뜨거운 입술이 하늘과 땅 사이에 저 신록들처럼 무성히 매달렸으면….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 『갈라진다 갈라진다』(문학과지성사)
▶ 음악_ won's music library 08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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