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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9월도 저녁이면/강연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6. 9. 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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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9월도 저녁이면

나민애 문학평론가

입력 2016-09-02 03:00:00 수정 2016-09-02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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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도 저녁이면 ― 강연호(1963∼ ) 
  
9월도 저녁이면 바람은 이분쉼표로 분다 
괄호 속의 숫자놀이처럼 
노을도 생각이 많아 오래 머물고 
하릴없이 도랑 막고 물장구치던 아이들 
집 찾아 돌아가길 기다려 등불은 켜진다 
9월도 저녁이면 습자지에 물감 번지듯 
푸른 산그늘 골똘히 머금는 마을 
빈집의 돌담은 제 풀에 귀가 빠지고 
지난 여름은 어떠했나 살갗의 얼룩 지우며 
저무는 일 하나로 남은 사람들은 
묵묵히 밥상 물리고 이부자리를 편다 
9월도 저녁이면 삶이란 죽음이란 
애매한 그리움이란 
손바닥에 하나 더 새겨지는 손금 같은 것 
지난 여름은 어떠했나 
9월도 저녁이면 죄다 글썽해진다
 
  

며칠 전 같은 날,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가을’임을 깨달았다. 바람, 서늘한 바람 때문이었다. 예고도 없이 하늘은 높아지고 공기는 차가워졌다. 그 순간 모든 우리는 서로를 모름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그러한 것처럼, 함께 사는 누군가에게 가을이 찾아왔음을 느꼈던 것이다.  


느닷없이 시작된 가을에 이 시만큼 어울리는 시도 없다. 가을은 강연호 시인의 작품들을 읽기 좋은 계절이고 그중에서 이 시는 9월의 첫 주에 가장 읽기 좋은 작품이다.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하는 시인이 아니어서 그의 시는 차근차근 따라가면 차곡차곡 읽힌다.

자, 이 시인도 가을의 바람부터 언급한다. 그 바람이 가을을 몰고 왔다. 찬 기운은 저녁이면 더욱 차가워져서 소슬한 가을의 느낌을 더할 것이다. 노을도 마찬가지다. 불이 난 것처럼 깊고 진해진 노을을 보면서 우리는 계절감을 물씬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계절이 완연히 바뀌었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해도 저물고 있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삶의 오묘한 깊이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담고 있는 삶은 무엇이며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이런 생각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생각을 하자니 알 수 없는 아련한 그리움이 찾아온다. 산그늘이 깊어지는 만큼 우리네의 생각도 깊어질 것이다.  

삶은 매일이 전쟁 같지만 지나고 보면 매미 껍질처럼 가볍고 안쓰럽다. 시인의 마음도 그러했는가 보다. 지난여름을 정리하며 9월은 글썽거리고 있다. 그렇게 마음도 생각도 깊어지라고 찾아온, 열심히 깊어지고 있는 가을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