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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생각
윤성택
나무가 스스로 예감에 겨워
바닥에 제 잎을 써내려가는 계절
구름 봉투에 봉해지는 하늘이 있다
밤이 뿌리를 내려 서녘에 가 닿으면
오늘밤 네가 핀다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 9』(머니투데이, 2014년 09월 01일)
가을은 어떻게 오는가. 좀 옛날 방식으로 말하자면 여인의 목에 감긴 스카프의 하늘거림으로부터 온다는 이도 있고 중년 남자의 담배연기로부터 온다는 이도 있다. 실체가 없는 예감이다. 마치 수평선에 걸려 있던 노을이 와, 와 하는 사이 풍덩 바다에 잠기고 마는 것과 같이 가을도 예감처럼 그렇게 순식간에 오는 것이겠는데 어디 계절뿐인가. 그대 생각하는 밤도 그리 오는 것 아니겠나. 아니 그대가 그리 오는 것 아니겠나. 대책 없이 그리워져서는 저 뒤집힌 땅과 하늘 사이가 환한 것처럼 그리 오는 거 아니겠나. 구름 봉투에 하늘이 봉해지고 밤이 거꾸로 뿌리를 내리는 시간의 틈 사이 꽃처럼 피는 것이겠는데 그대, 뉘라서 저리 환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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