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저 집
최광임
낳고 기른 제 자식 앉힐 구들 한 장 온전치 못한
엄마 닮은 저 집엘 간다, 굽어 기운 다리로 겨운 걷는
구순 노모의 몸짓처럼 낡은 기둥 가까스로 버티어 선
나 태어난 저 집에 간다
허무의 거울을 보며 세월을 빗질하는 엄마처럼
무수한 들깻잎 울타리 삼아 애써 속내 감추고 시치미 뚝 떼는,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 11』(머니투데이, 2014년 09월 12일)
지난 토요일 고향 변산엘 다녀왔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아 반겨주는 이 하나 없는 데도 나는 자꾸 변산에 가곤 한다. 그곳엔 아직도 젊은 내 엄마와 어린 오라비와 천방지축 뛰어노는 철부지 내가 살고 있는 탓이다. 집 뒤안엔 달빛에 익어가던 단감나무가 있고 가을 햇살에 저절로 붉게 벌어지던 늙은 석류나무 있다. 밤이면 변산 앞바다의 밀물들이 밀려와 마당 한켠을 휘돌다 컹컹 짖어대는 메리의 소리에 화들짝 놀라 썰물이 지기도 한다. 정오도 채 되지 않아 술에 취한 아버지가 고래고래 나를 불러대고 나는 아버지 심부름을 피해 강아지처럼 마악 탱자나무 울타리 아래로 기어 나오기도 하는 곳, 내 유년의 집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아직 살아계신 엄마가 감사하듯 저 겉모습만으로도 가고 또 가도 늘 그리운 내 집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디카시 ♠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목나무/임동확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 13) (0) | 2016.09.08 |
---|---|
찬란한 오후/김상미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 12) (0) | 2016.09.08 |
곰파Gompa/김재훈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 10) (0) | 2016.09.08 |
그대 생각/윤성택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 9) (0) | 2016.09.08 |
淸潭洞/이운진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 8) (0) | 2016.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