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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에 앉아
우대식
나를 꺼내 읽는다
그 어디에도 사랑이라는 문자는 없다
꼭 걸어서 당도하라는 당신의 부탁만이
활판活版의 문자로 새겨졌을 뿐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 24』(머니투데이, 2014년 11월 03일)
강둑에 앉아있는 중년의 나와는 달리 저 노을은 아직도 뜨겁게 붉다. 철길 위 기차는 거침도 없이 지금 마악 목적지를 향해 강을 건너 사라졌다. 어제는 가을바람에 낙엽이 더욱 서걱거렸고 중년의 내 가슴에서도 서걱서걱 나뭇잎 뒹구는 소리가 났던 것도 같다. 바람이 낙엽을 쓸어 갔는지 낙엽이 바람을 일으켰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안에서 새어 나오는 ‘쓸’자 하나에도 급하게 비워지는 무엇을 느낀다. 붉은 노을을 심지 삼아 화르륵 불 붙일 나를 찾아 뒤적거려 보지만 금세 지나간 기차마냥 사랑은 오리무중이다. 수없이 많은 노을이 지고 또 오는 사이 많은 것들을 스쳤고 흘려보낸 까닭이다.
이제 좀 더 더디 스치고 유속이 느린 강줄기마냥 더디 흘러도 좋으리라. 저 노을 어딘가 한쪽 구석에 새겨놓은 “꼭 걸어서 당도하라는 당신의 부탁”만이 눈에 들어오는 가을 석양인 것이다.
이제 좀 더 더디 스치고 유속이 느린 강줄기마냥 더디 흘러도 좋으리라. 저 노을 어딘가 한쪽 구석에 새겨놓은 “꼭 걸어서 당도하라는 당신의 부탁”만이 눈에 들어오는 가을 석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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