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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숲길
박호민
숲은 애써 말하지 않는다
그냥 와서 느끼라고만 할 뿐
생이 어찌 어둡기만 할 것인가
가끔은 이렇게, 사무치도록
그리움의 빛살 한 줌 풀어놓는 것을.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 36』(머니투데이, 2014년 12월 19일)
어느 한 해인들 어찌 춥지 않은 겨울이었겠는가마는 유독 춥게 느껴지는 올겨울이다. 봄은 아직 멀고 긴긴 겨울은 이제 시작인 듯한데 추위는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지난 가을처럼, 여름처럼 변함없이 자신이 일구는 숲을 향해 부산하게 오고 간다. 그러고 보면 유독 겨울은 사람과 불화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많은 날이 자연의 압승인 편이고 사람도 대체적으로 혹한의 겨울 앞엔 고분고분하고 온순해진다. 이것이 우주 만물의 이치인 셈이다. 자연은 자연대로 수억만 년에 걸쳐 되풀이하는 현상이겠고 사람살이 또한 누대에 걸친 삶의 형식이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사는 동안 힘들지 않은 생이 어디 있겠는가. 눈 내리고 그늘진 저 숲길을 걷는 것이 사람살이의 그림인 셈이다. 그 길에서 어떤 이는 눈과 추위와 그늘만 보며 한 생을 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시인처럼 저 한 줄기 빛을 감지하고 잠시 그리움에 마음 녹여가며 걷는 이도 있을 터. 종내는 내 눈높이만큼 이어지는 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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