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 모음

정박/정한용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 37)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6. 9. 1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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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박

 

정한용

 

 

바람 차고 길 끊겼다

올 수도 갈 수도 없는 절정에 서 있어도

멈춤은 출항의 힘을 닦는 법

내일 그대에게 직방으로

닿겠다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 37(머니투데이, 20141222)



  그렇다. 생의 강렬한 충동은 모든 것의 충족이 아니라 결핍에서 나오는 법이다. 봄의 생명력이 왕성하고 더없이 아름다운 것은 혹독한 겨울을 지나왔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랑이 부재할수록 사랑에 대한 그리움 또한 커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없다, 부족하다는 이 결핍이야말로 생의 리비도가 되는 법이니, 가을도 멀고 봄도 멀어 “올 수도 갈 수도 없는” 이 겨울의 절정에 서서 힘을 닦을 일이다. 몸, 맘이 오고 가지 못할 어떤 상황에 처한다 해도 그것은 절망이 아니다. 절정이다. 생의 그 무엇을 제대로 발효시키고 단단하게 닦는 기간이다. 이제 출항할 일만 남은 것이다.

  시인도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을 ‘절정’이라 하지 않는가. ‘힘을 닦는 일이라 하지 않는가. 그리하였으므로 “내일 그대에게 직방으로 닿겠다”하지 않는가.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출항의 힘을 닦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