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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이명숙
바람은 바람의 길 양보하지 않는다
한소끔 빛을 위해 저리 깊이 우는가
온 몸에 누덕 옷 걸친 제 설움에 우는가
가난도 희망인 양 노래하는 달빛 소리
마두금 대신 우는 유목의 행성인가
일숫돈 장기 삽니다
휘장처럼 두른 허기
덕지덕지 피 칠갑 그 무슨 약속인 양
벌건 대낮 얼룩진 지린내도 보듬어
벌서듯 무덤 사이 핀
상처 깊은 꽃이다
―시집『썩을,』(고요아침,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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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산물인 전봇대의 용도는 누구나 알고 있을 터, 하지만 도시의 전봇대는 또 다른 감성으로 다가 온다. 우리 집 앞에도 멀대같은 큰 키의 구걸하는 사내처럼 전봇대 하나 서 있다. 아침저녁 수시 때때로 만나는 사내는 몸에다 늘 광고판을 붙이고 사는데 시인은 바람의 길을 양보하지 않아 찢기고 상처 난 전단지를 누덕 옷을 입은 채 제 설움에 운다고 한다.
실업자 같은 저 사내 어찌 서럽지 않겠는가. 언제부턴가 온 몸으로 광고를 하고 있지만 몸에는 늘 지린내가 배여 있고 급해서 쓴 일숫돈은 나날이 목을 조여 온다. 아무리 희망을 노래해도 이제는 장기까지 내다 팔아야하는 세상이 원망스럽고 고달프기만 하다. 언제쯤이면 상처 없는 꽃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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