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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희망 -이선영
희망
ㅡ이선영(1964~)
이른 아침 불 미처 켜지 않은 어두운 방
반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에
책상 위 놓여있던 흰 종이 한 장만 환하다
그 종이에 씌어진 검은 글씨들이 눈에 와 박힐 듯하다
사회는 나를 포기해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않는 이것이 무엇인지 분명 아는데
살고 싶다, 난 산다 *
눈이 아프다
눈길이 묶인다
종이 한 장만한
딱 고만큼만 어둠을 훼손하는 햇살
여우볕 같은 희망
* 루게릭 병을 앓고 있는 박승일의 글에서 발췌.
■ 희망이 어두운 방에 들어오는 흰 종이 한 장만 한 햇살이라면 희망의 무한성과 반복성이 강조된다. 지난해 대학원 강의에서 『은유 테라피』라는 책을 공부했는데 은유라는 것이 한낱 수사학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자아 치유의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시인 김정환의 시집 제목 중에 『희망의 나이』라는 것이 있다. 정말 우리가 묻고 싶고 알고 싶은 것은 희망의 나이. 희망의 나이는 몇 살입니까? 과연 몇 살이기에 오늘도 내일도 또 어느 괴로운 날에도 꼭 오십니까? <김승희·시인·서강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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