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새긴 주홍글씨.. '사라'는 즐겁지 못했다
입력 2017.09.07. 03:01
마광수 '즐거운 사라' 필화 25년
[동아일보]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의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 영정.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
올해 1월 ‘마광수 시선’을 출간한 페이퍼로드 출판사의 최용범 대표는 “고인은 책이 나올 때만 해도 소설과 시를 더 쓰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지만 점점 기운을 잃어갔다. 고인을 구속하고 강단에 서지 못하게 한 건 창작 의욕을 말살시켜 죽음에 이르게 만든 사회적 타살이다”고 비판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가 이 책에 넣을 시를 선별할 때 “외설 시비에 걸릴 수 있는 작품은 모두 빼자”며 자기 검열을 심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즐거운 사라’는 작가 인생의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였다. 운명의 시계가 다른 쪽으로 움직였다면 그의 삶은 다른 날개를 달 수 있었을까? 새삼 이 작품을 둘러싼 당시 분위기와 재판 과정에 관심이 쏠린다.
○ 주홍글씨가 된 ‘즐거운 사라’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가 26세였던 1977년 4월 11일 본보 5면에 기고한 ‘세상을 그르치는 신념의 공해’라는 제목의 칼럼. 당시 한양대 강사였다. 동아일보DB |
1991년 7월 여대생 사라의 문란한 성생활을 다룬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가 출간됐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같은 해 9월 이 작품에 대해 “사라가 생면부지의 남자와 갖는 즉흥적 동침, 여자친구와 벌이는 동성애, 적나라하게 그려진 자위행위, 스승과 벌이는 부도덕한 성행위 등을 묘사한 퇴폐적 성애소설”이라며 제재 결정을 내렸다. 이 책을 처음 냈던 서울문화사는 즉각 출판을 중단하고 서점에 풀린 책을 거둬들였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92년 8월 ‘즐거운 사라’는 마 전 교수의 문단 동료인 장석주 시인(63)이 대표로 있던 청하출판사에서 다시 간행됐다. 간행물윤리위는 같은 해 9월 또다시 제재 결정을 내리고 검찰에 관련 내용을 통보했다.
○ 운명의 시계, 세상의 시계
이 사건은 이른바 ‘대통령 하명(下命)’에 의한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정확하게는 확인되지 않는다. 검찰과 변호인, 감정인 등 당시 재판에 등장한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즐거운 사라’를 둘러싼 사회적 관심과 논란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서울지검 3차장은 훗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지낸 특별수사통 검사들의 대부(代父) 심재륜 전 고검장(73)이었다. 그는 2012년 한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즐거운 사라’에 대한 사법처리는 오롯이 나로부터 시작됐다”고 적었다. 마 전 교수가 언론 인터뷰에서 현승종 당시 국무총리가 자신에 대한 수사를 지시했다고 한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심 전 고검장은 ‘즐거운 사라’ 첫 페이지를 읽다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반인륜적, 반도덕적 소설”이라며 수사를 지시했는데, 검사들이 모두 손을 저었다. 결국 불교와 한학에 조예가 깊어 ‘도인’ 소리까지 듣던 김진태 특수2부 검사(65·전 검찰총장)에게 사건이 배당됐다. 처음에 수사 맡기를 주저하던 김 검사는 하루 만에 마 전 교수의 저서는 물론 ‘채털리 부인의 사랑’ 등 외설 논란에 휘말린 외국 서적까지 탐독한 뒤 “제가 하겠다”며 수사를 자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해 10월 29일 마 전 교수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하더니 마 전 교수에 이어 장 시인까지 구속했다. 김 검사는 당시 법정에서 “카타르시스의 그리스어 어원을 아느냐” “카타르시스는 육체적인 쾌락이 아니라 정신적인 정화로 얻어지는 것”이라며 마 전 교수와 논박했다. 김 전 총장은 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은퇴한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겠느냐”고 했다.
마 전 교수의 변론은 검사 출신의 대표적 인권변호사로 감사원장을 지낸 한승헌 변호사(83)가 맡았다.
항소심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낙마한 안경환 전 서울대 법대 교수(69)가 외설 여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감정인으로 참여했다. 당시 안 전 교수는 이 작품에 대해 “헌법이 보호하는 문학작품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단순한 ‘음란물’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반면 또 다른 감정인인 민용태 전 고려대 교수(74)와 소설가 하일지 씨(62)는 “‘즐거운 사라’는 음란하지 않다”며 마 전 교수를 옹호했다.
○ 25년 뒤 오늘…
문단과 출판계는 비통해하며 자성하는 분위기다. 고인이 구속되고 재판을 받을 때 침묵한 것을 반성한다는 문인이 많다고 한다. 이 사건을 기억하는 한 시인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창작품의 표현을 둘러싼 날선 공격과 여론을 앞세운 재판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배우 김수미 씨가 빈소에 술에 취한 채 찾아와 “마광수가 내 친구인데 너무 슬프다. 나도 죽어버리겠다”며 통곡하기도 했지만 지인이 아니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고인의 제자인 나희덕 시인은 “‘야하다’는 것은 관능적이고 퇴폐적이라는 의미보다는 인간이 문명화됨으로써 갖게 된 허위의식과 겉치레, 과잉 이데올로기로 인한 폭력성에 반대하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떠난 이달, 새 소설집 ‘추억마저 지우랴’가 출간된다. 처음 발표하는 단편 21편이 수록됐다. 표지에는 고인이 그린 유화를 싣기로 했다. 어문학사 출판사는 고인이 중편, 장편 소설도 차례로 내자고 제안했으며 중편은 완성됐지만 아직 받지 못했다고 했다.
고인은 머리말을 대신해 ‘그래도 내게는 소중했던’이라는 제목의 서시(序詩)를 썼다. ‘시들하게 나누었던 우리의 키스/어설프게 어기적거리기만 했던 우리의 춤/시큰둥하게 주고받던 우리의 섹스//기쁘지도 않으면서 마주했던 우리의 만남/울지도 않으면서 헤어졌던 우리의 이별/죽지도 못하면서 시도했던 우리의 정사(情死)….’
손효림 aryssong@donga.com·권기범·김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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