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100주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판한 한국문학선집에 수록된 시조 4편)
꽃과 여인
이태극
1
가득 함초로히
마주 연 입술과 입술
구겨진 마음씨도
해밝은 거울인데
계절이 노을진 아침
보람만 찬 기슭이네
2
부분 가슴 그저
꿈이도록 영롱하고
벌나비 사려가며
내 자란 정열이기
태양도 저리 한갓져
재롱만스런 외면인가?
3
펄펄 세월이 지네
구비 구비 인생길에
저기 낙엽들이
눈보라를 손짓하네
사랑은 배리(背理)의 사탑(斜塔)
웃음 짓는 꽃과 꽃
(『꽃과 여인』. 동민문화사.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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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
이태극
선과 선의 흐름이어
손과 손의 견줌이어
여기는 네거리
네 내가 섰는 곳
우러러 구름길 보다
발길 다시 옮는다
그래 밝고 흐림의
지울 수 없는 교차로
웃다 울다 가는
삶의 도가니 속
굽어서 날빛을 찾는
발길 다시 옮는다
(『꽃과 여인』. 동민문화사.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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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
이태극
골짝 바위 서리에
빨가장이 여문 딸기
가마귀 먹게 두고
산이 좋아 사는 것을
아이들 종종쳐 뛰며
숲을 헤쳐 덤비네.
삼동(三冬)을 견뎌 넘고
삼춘(三春)을 숨어 살아
되약볕 이 산 허리
외롬 품고 자란 딸기
알알이 부푼 정열이사
마냥 누려지이다.
(『꽃과 여인』. 동민문화사.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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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상(西海上)의 낙조
이태극
어허 저거, 물이 끓는다
구름이 마구 탄다.
둥둥 원구(圓球)가
검붉은 불덩이다.
수평선 한 지점 위로
머문 듯이 접어든다.
큰 바퀴 피로 물들며
반 나마 잠기었다.
먼 뒷섬들이
다시 환히 열리더니,
아차차, 채운(彩雲)만 남고
정녕 없어졌구나.
구름 빛도 가라앉고
섬들도 그림 진다.
끓던 물도 검푸르게
잔잔히 숨더니만,
어디서 살진 반달이
함(艦)을 따라 웃는고.
(『꽃과 여인』. 동민문화사. 1970)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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