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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 지상 시 창작 강의 (26) - 원형의 유형 1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8. 3. 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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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 지상 시 창작 강의 26


원형의 유형 1



1. 은유의 확장


사람들에게 붙여 부르는 별명은 그 사람의 상징이며 총체적인 이미지의 결합이다. 이들은 유사성에 의하여 나타나는 상징인 것이며 어떤 경우에는 이름보다 더 깊은 인상으로 기억될 수가 있다. ‘키다리’나 ‘드럼통’ ‘돼지’라 별명을 부를 때는 그 사람을 보지 않고서도 그 사람의 체형이나 이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돼지나 드럼통이 갖는 원형적인 이미지가 우리들 머릿속에 이미 상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원형적인 이미지에는 휠라이트 견해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에 의하면 천지, 부모, 상하, 피, 빛, 말, 물, 수레바퀴 등의 상징들은 문학에서 계속 반복하여 나타나며 이들은 원형적인 상징에 속한다. 이러한 상징들이 부단히 반복되어 나타나는 이유는 그들이 모든 인간들에게 유사한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타내는 유사성은 특히 물질적인 측면과 심리적 측면에서 고찰된다. 여기에서 몇 가지 중요한 원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가) 상, 하의 원형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는 측면에서 모든 인간들은 종속된다. 그러기에 위로의 지향은 아래로의 지향보다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위는 이룬다는 의미와 결합되며, 위대함, 숭고함, 탁월성을 내포한다. 이런 의미를 내포하는 여러 이미지들은 그 자체의 관념과 결합되고, 때로는 군주의 왕권이나 명령의 의미와도 연결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위로의 투쟁>이 <아래로의 투쟁>이란 말보다 자연스럽다. 위의 의미와 결합되는 이미지들인 <비상하는 새> <공중으로 쏘는 화살> <별> <산> <돌기둥> <자라는 나무> <탑> 등은 성취의 욕구나 신분 상승을 의미하고 마침내 선의 의미 속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아래로의 이미지는 위로의 의미와는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우리는 s

<나쁜 습관 속으로 떨어진다>고 하지 <나쁜 습관 속으로 올라간다>고 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종교적으로 지옥과 같이 심연의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지옥이나 심연에서 찾아낼 수 있는 관념은 <무질서>와 <공허>라는 것이다.

이렇게 상, 하의 상징들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관념이나 이미지와 혼합되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또한 상, 하의 상징적 의미는 신화적 사상 속에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곧 아래는 꽃 핀 광활한 대지, 모든 생물의 궁극적인 어머니상을 지향한다. 상, 하의 대비가 천지관계의 구체적인 형식으로 드러날 때는 그 자체의 의인화의 형식이 되고 있다.


나) 피의 원형

시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원형중의 하나가 피일 것이다. 원형적 상징으로서 피는 장력적이며 역설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피는 첫째로 선과 악의 두 요소로 구성되며, 선의 관념일 때는 명료하지만 악의 관념일 때는 명료하지가 않다.

둘째로 긍정적인 면에서 생을 함축 하지만 사회학적으로는 불길한 의미와 결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마술의 붉은 색, 곧 <힘>의 상징을, 후자의 경우로 금기<터부>, 곧 지나치게 피를 흘림은 <죽음>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셋째로 피는 처녀성의 상실, 여성의 월경과 관련하여 한편에서는 금기로 다른 편에서는 상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넷째로 자연적 논리에 따르면 피는 무서운 형벌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피를 섞어 어떤 맹세를 하며 이러한 의식은 한 형제가 됨을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맹세의 파기는 두 사람의 혈연을 더럽히게 되며, 피를 흘림으로서 그 혈연관계를 더럽힘으로 하나의 형벌이 되어 나타난다.

다섯째로 피는 죽음, 탄생, 사춘기(초경), 결혼 등의 육체적 양상, 전쟁, 건강, 힘 같은 일반적인 관념과 결합됨으로써 의식과 원시관념의 공동경계를 함축하고 있다. 죽음이면서 바로 재생인 동시성으로 나타나며 이것은 모든 사건을 전환적 사태로 인식함을 뜻한다. 정열적이며 역설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 침투적인 사태는 의식으로 나타나며, 그것은 마술적 의식과 모방적 의식으로 양분된다. 전자에서는 어떤 사건을 천명하는만큼 그 사건을 추방하게 되며, 후자에선 어떤 사건을 인간적인 것으로 재천명한다.

이러한 전환적 행위들과 결합되는 여러 이미지나 소도구들로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파이프 연기> (평화-전쟁, 생-사, 질병-건강, 가뭄-비, 파종-수확으로서의 상호전환)와 <남근상>(피-생기(발기), 생장-죽음) 밭갈기(성적 결합)이 있다. 이들은 각각 전환적 행위를 위한 상징적 매재가 되는 것이다.


다) 빛의 원형

빛은 유추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성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로 빛은 <견성>을 나타낸다. 곧 어둠을 추방하여 사물을 명료하게 인지케하며, 이런 특성은 은유적 단계에서 지적 공간화를 상징하는 것이다. 둘째로 빛은 신화적 단계에선 시각적 실체로 정의되지 않는다. 이 단계에서 빛과 열은 <혼융된 개념>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빛은 지적 명료성의 상징이며 동시에 불은 은유적 내포가 된다. 셋째로 빛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물질로서 <불의 특성>을 환기한다. 고대로부터 불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것은 극적인 신속함과 결합된 광도, 위용, 집중, 연소의 이미지 때문이다.

그러나 불의 규제된 유형으로 불꽃이 있다. 또한 상의 개념과 결합되어, 상의 상상적 내포인 선을 지향하며, 지상의 불은 궁극적 근원인 태양을 상기할 때 불은 <선을 내포하며 동시에 상향의 관념과 결합> 된다.

그러나 빛의 또 다른 심원한 특성은 지나친 빛이 장님이 되게 함에서 찾아진다. 곧 빛은 <암흑>과 직결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빛과 암흑은 상호보족적인 관계이며, 이 둘이 전체세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동양에서의 음양의 상징은 바로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또한 빛은 특수하게 <정신에 대한 중심적인 상상적 상징>이 된다. 곧 정신을 취의로 하는 의미론적 매재가 되는 것이다. 끝으로 신성의 단계에서 바로 <신성>의 상징이 되며 신은 빛이 되는 것이다.


라) 말의 원형

인간의 특성은 말을 통하여 서로 의사소통을 이룬다는데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말을 하고 듣는다는 것이다. 인간존재의 의미는 여러 가지 윤리적 감성으로 드러나며, 이러한 감성은 충동의 세계를 초월하고 있다. 말이란 이성이며, 이것은 윤리적 판단에 의미를 주는 <존재의 당위성, 정당성>을 상징하는 청각적 이미지이다.

원시시대에 성스러운 명령은 물질적 소요나 혼돈 속에서 상징의 세계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거센 바람소리><포효><천둥소리> 등이며, 원시인들은 바람소리를 모방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천둥소리는 성스러운 부름의 청각적 표현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청각적 이미지는 <양심의 소리> 같은 말로 제시되며, <신명> 같은 말 속에 나타난다.


마) 물의 원형

물은 정화 한다는 특성과 생명을 유지시킨다는 특성과 결합되어 보편적인 호소력을 구현한다. 곧 <순수>와 <새생명>을 상징한다는 말이다. 세례의식을 상기해보면 더욱 명료해질 것이다. 이때 물은 죄를 씻어버리고 새로운 정신적 생의 시작을 상징하게 된다. 곧 생명의 물이 된다. 태아가 느끼는 양수와 같은 물은 바로 그것의 대표이며 시인들은 그것을 하나의 강한 은유로 받아들이고 있다.


바) 새의 원형

새는 창공을 마음대로 날은다는 의미에서 자유로움, 현실로부터 탈피, 속박으로부터 벗어남을 상징한다. 날지 못하는 인간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이카로스의 신화에서 드러나듯이 비상의 꿈은 인간의 심연에 자리하고 있는 영원한 숙제인 것이다. 그러기에 지상을 떠나 날고 싶은 욕망은 바로 현실 세계로부터 벗어남을 의미하며 새는 그것을 충족시켜 주는 상징인 것이다. 천상병 시인의 새 연작은 그것을 쉽게 깨우쳐 주고 있다.


새를 그린다

힘차게 퍼덕이는 커다란 날개

날개를 타고 가는 크레온의 곡선을


그려놓고 다시 보니

새가 없다

다만 찟긴 날개 몇 짝

무참하게 방바닥에 흩어져 있다


그리려는 순간에 재빨리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 버린 새

모양이 없는 새

그리고 뒤에 남은 휴지의 구겨짐


창밖엔 헛것처럼 달이 떠있다

남은 도화지로

누군가 하늘에 오려 붙인 새

새가 아닌 낮달이


李炯基 <낮달> 전문


사) 원의 원형

일반적으로 원은 가장 철학적인 의미를 지닌 원형에 속한다. 원은 이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원이 구체화 된 모습은 수레바퀴이며 이것에는 살이 있다. 또한 이 살은 원과 함께 회전하며 그 모습에서 수레바퀴의 살은 태양의 살을 표상한다고 본다. 곧 수레바퀴의 살이나 태양의 살은 모두 생을 부여한 중심근원으로부터 우주의 모든 사물에 미치는 창조적 영향의 상징이 된다. 살의 회전은 그 축이 편안할 때는 살과 가장자리의 운동은 완전히 정상적이며, <영혼의 고요한 중심>이 경험과 행위의 평정한 질서를 낳는다는 인간적 진리를 상징한다.

그러나 수레바퀴는 앞의 원형들처럼 <상극적인 특성>을 내포한다. 긍적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부정적인 면에서 수레바퀴는 서양에서는 운명의 장난, 동양에서는 죽음과 재생의 끊임없는 반복, 곧 윤회를 상징하며 긍정적인 면에서 수레바퀴는 힌두교의 달마, 곧 신성의 법칙이며, 불교에서는 법을 상징한다. 이런 상징의 독특한 보기가 <연꽃>에 의해 상징되는 <순수고요의 세계>이다. 이때 수레바퀴는 그 축에 연꽃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며, 연꽃은 때때로 빛을 투사한다. 실제로 동양에서 연꽃은 단일하고 순수한 아름다움, 물에 의해 태어나는 신비라는 두가지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상의 여러 가지 원형들은 결국 은유적 활동의 확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휠라이트의 견해이다. 어떤 은유들이 장력적 상징으로 정착됨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왜냐하면 언어 없이는 사상의 표현은 불가능하며, 은유적 활용 없이는 언어의 행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장력적 상징은 그리하여 사물의 본질을 암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