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 시 창작 강의-25
원형에 대하여
우리가 시를 쓸 때 흔히 차용하는 소재 즉 신화나 정형화된 인물, 사물들을 원형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면 원형이란 어떤 사물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양상을 이르는 것이다. 시에 사용하는 대상(사물)들은 모두가 보편적인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는 이러한 견해는 물론 관념적이긴 하지만 시인에게는 소중한 의미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것은 그 사물이 가진 의미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요하게 해 주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닫힌 창으로 새를 날려보낸다
새는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앞마당 감나무에 앉았다
잠시 뒤를 한번 돌아보더니 이윽고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먼 먼 하늘로 날아 가버렸다
새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보았지만
하늘은 캄캄해지고 난 뒤에도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독자의 시 [새] 중에서
이 시에서 원형으로 차용된 것은 새라는 동물이다. 여기에서 새는 구체적인 이름이 없는 일반적인 모든 새를 포함하며 그것이 주는 의미는 자유로움이다. 새는 이 시에서가 아니라 그 지닌 의미가 자유라는 것을 알게 모르게 느끼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원형의 하나인 것이다. 그것은 오랜 기간에 새가 가진 이미지가 자유라는 의미로 관행처럼 사용되어 왔기에 원형이 된 것이다.
시가 모방이라고 할 때 일반적으로 모방은 어떤 사물이 실지로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고, 어떤 사물도 한결같이 원형을 내포한다면, 결국 모든 모방의 행위는 궁극적으로 구체적인 사물의 세계가 아니라, 그 세계가 나타내는 보편적인 형식인 원형의 세계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위 시에서 <새>와 같은 사물이 쉬운 예라고 할 수 있다. <바다>나 <돌멩이>라는 사물로부터 어떤 원형을 추출해 낼 수 있을지 금방 떠오르는 이미지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그것이 나타내는 원형에 접근할 수가 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의미로부터 출발하여 시인이 새롭게 그 원형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원형의 세계는 모든 구체적인 사물들이 지니는 여러 특성들을 기본적으로 대표하는 세계이다. 그것은 매우 추상적인 범주의 세계라고 할 수 있지만 어떤 특수한 사물에도 한결같이 뿌리를 박고 있는 깊은 근원인 것이다.
바다는 어머니 품 속 같다
물 밑 해초를 춤추게 하고
밤마다 성난 파도를 잠재운다
아침에 뜨는 해를 향해
말간 길을 트게 하고
걸어서 희망에 닿게 한다
바다는 어머니 품 속 같다
이 세상 모든 강물을 품어 안고도
넘쳐나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와 보채어도
흔드는대로 어깨를 내어 준다
새를 날려서 기쁜 전갈을 보내온다
독자의 시 [바다] 부분
위 시에서 바다가 지닌 원형은 어머니라는데 있다. 원형이란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가 나타내는 진리의 세계라고 볼 수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는 질료가 형상에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형상의 능력을 지닌다고 본 점에서 원형은 질료가 아니라 형상의 세계에 해당하는 것이다. 바다가 어머니에게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바다가 어머니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시론에서 원형이란 일반적으로 세속적이고 특수하고 독자적이기보다는 <원시적이고,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여러 기본적 특성을 내포하는 상황, 사건, 관계, 대상, 행동, 인물, 관념>을 뜻한다. 이렇게 볼 때 원형은 모든 사물이나 관념, 사건들에도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원형의 이러한 일반성과 보편성은 대체로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첫째로 원형은 다양한 문학작품에 나타나는 유사성만을 지시하고 있다. 이때 문학 이론가들은 어떤 전형적인 설화나 민담이 시간적 공간적 측면에서 어떻게 변주되었으며 어떤 점을 유사성으로 내포하는 가를 탐구하는 것이다.
둘째로 원형은 문학 작품 자체가 아니라 작품 외부에서 발견되는 보다 광의의 유사성을 지시한다. 이때 비평가들은 시 속에서 발견되는 사실을 신화, 꿈, 의식들과 비교하여 검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세익스피어의 햄릿의 경우, 우리는 세익스피어의 여러 극과 복수극 사이에서 발견되는 유사성을 기초로 하여 복수극의 원형을 추구할 수 있다. 또한 세익스피어의 극과 여러 신화, 민담, 설화 특히 인류학적, 심리학적, 문학작품들 속에서 발견되는 유사성을 기초로하여 외디프스적 상황의 원형을 유형화 할 수 있다.
전자의 방법은 보다 직접적인 방법이며, 따라서 우리는 여러 영웅담을 연구하여, 그 영웅담들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인물의 성격을 도표로 나타내야 한다. 그러나 후자의 방법은 보다 간접적인 방법이다. 이것은 인류의 집단 무의식, 시의 의식적 기원, 문화의 보급 따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의미를 해명하기 위하여 어떤 가설을 구성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위의 두 방법은 실제로는 중첩되어 사용되고 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시에 있어서 원형을 이야기 할 때, 우리는 한 종류 혹은 그 이상의 기본적이고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유형(이미저리)에 대하여 언급하게 된다.
첫째로 이러한 보편적인 이미저리의 탄생, 성년, 사랑, 죄, 구원, 죽음 따위를 예시할 수 있으며 이들을 원형적 제재라고 부른다.
둘째로 이성과 상상력, 자유 의지와 운명, 현상과 실재, 개인과 사회 등의 갈등을 우리는 원형적 주제라고 부른다.
셋째로 부모와 자식 간의 불화, 형제들 간의 경쟁, 근친상간에의 욕망, 아버지 찾기, 여성적이며 동시에 남성적인 양면 감정, 최초로 도시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젊은 촌뜨기 등을 모두 원형적 상황이라고 부른다.
넷째로 자랑꾼, 익살꾼, 영웅, 악마, 반역자, 방랑자, 유혹자, 매혹적인 여자 마법사, 하녀, 추한 마녀 등을 원형적 인물이라고 부른다.
다섯째로 일정한 동물, 새, 자연현상, 자연환경 등을 우리는 원형적 심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결국 시 속에서 이상 다섯 가지 이미저리 가운데 어느 요소가 독자적이든 혹은 다른 요소와 결합되어 나타나든 그 자체로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속성을 환기할 때 그것을 원형적 형태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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