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둥지(변주)
김신용
뻐꾸기 둥지는, 사람의 귀네
귓속의 달팽이관을 오므려 조그만 둥지를 만들어 주는,
그 둥지에서 태어난 새끼가, 다른 알들은
모두 둥지 바깥으로 떨어트려 버리고는, 끈질기게
울음의 핏줄을 이어주는, 귀네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시침 뚝 떼고 있는
없는, 그 뻐꾸기 둥지를 옮겨와, 귓속에
가만히 둥지를 모아 주는, 동그마한 귓바퀴
일생 동안 집을 짓지 않으니,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야 하는
천형 같은 탁란의 생을, 마치 포란이듯 품어 주는
부드러운 귓바퀴,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일생을
죄의식도 없이 견뎌야 하는, 생을
제 집이듯 데려와, 슬픈 모습 그대로 살게 하는
없는, 뻐꾸기의 둥지는
사람의
귀네
―『문장웹진』(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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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가 크다가 해서 뭐든 다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뻐꾸기는 작은 보모들에 비해 엄청난 몸집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탁란을 하는 뻐꾸기, 왜 뻐꾸기는 자신의 새끼를 직접 기르지 않고 휘파람새, 때까치, 알락할미새 같은 유모들에게 위탁을 할까.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뱁새라고 부르는 붉은머리오목누이를 위탁모로 둔다고 한다.
티브에서 여러번 본 적이 있지만 갓 부화한 뻐꾸기새끼는 먼저 깨어나 붉은오목누이의 알을 엉덩이로 밀어 올려 둥지 밖으로 떨어뜨린다. 자기보다 먼저 부화한 위탁모의 새끼가 있으면 새끼, 알 모두 둥지 밖으로 다 몰아내고 혼자서 먹이를 받아먹는다. 뻐꾸기새끼는 어느 정도 지나면 붉은머리오목누이 보다도 커지는데 먹이를 받아먹을 때 보면 위탁모의 머리가 먹이와 같이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
탁란의 전문용어로는 육아기생, 부화기생이라고 하는데 물고기 곤충 여러 생물들이 부화기생, 육아기생을 한다고 한다. 뻐꾸기 외에도 탁락조는 9,000종이나 되는 전체 조류 중 102종 약 1%라고 한다. 숙주 또한 쉽게 당하지를 않아서 실제로 뻐꾸기의 탁란 성공률은 10퍼센트 정도라고 하는데. 직접 기르는 조류들보다 번식의 성공률이 떨어진다.
탁란이 종 보존의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뻐꾸기는 탁란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까. 어떤 다른 종들은 생존율을 높이려는 종족보존의 일환이라고 하지만 뻐꾸기의 탁란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가설에 보면 스스로 둥지를 만들지 못한다는 설이 있는데 둥지를 못 만드니 알을 낳아 품을 수가 없는 것이고 다른 가설로는 교미 습성 때문이라고 한다.
암컷 뻐꾸기는 적어도 4개, 6개의 알을 낳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 알을 한 두개 낳을 때마다 교미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여러 차례 교미한 후 한두 개씩 주기적으로 알을 낳기 때문에 먼저 낳은 알을 품어주지 않으면 썩어버리고 여름 철새로 머물러 있는 시기가 짧아 낳을 때마다 품어줄 시간이 모자라 생존전략으로 탁란을 할 수밖에 없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해외 입양이라는 이름으로 탁아 수출의 오명을 못 벗어나고 있는 우리나라. 베이비박스를 탁란으로 치환한 박미라 시인의 시가 있듯 뻐꾸기라고 해서 도덕적인 어떤 죄의식이 없을까. 종족보존의 확률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탁란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뻐꾸기는 알고 있을 테지만 자기 새끼를 기르는 제 손으로 키우는 기쁨을 알 수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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