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난 꼬막
박형권
아버지와 어머니가 염소막에서 배꼽을 맞추고 야반도주할 때
가덕섬에서 부산 남포동에 닿는 물길 열어준 사람은 오촌 당숙이시고
끝까지 추적하다 선창에서 포기한 사람들은 외삼촌들이시고
나 낳은 사람은 물론 어머니이시고
나 낳다가 잠에 빠져들 때 뺨을 때려준 사람은 부산 고모님이시고
나하고 엄마, 길보다 낮은 집에 남겨두고
군대에 간 사람은 우리 아버지시고
젖도 안 떨어진 나 안고 `천신호`를 타고, 멀미를 타고 가덕섬으로 돌아온 사람은 할머니시고
빨아 먹을 사람 없어지자 젖이 넘쳐나
염색공장 변소 바닥이 하얗도록 짜낸 사람은 다시 우리 어머니시고
젖 대신 감성돔 낚아서 죽 끓여 나를 먹인 사람은
큰아버지시고
무엇을 씹을 때부터
개펄에서 털 난 꼬막 캐와서 먹인 사람은 큰어머니시고
그렇게 저녁마다 차나락 볏짚으로 큰아버지 주먹만 한 털 난 꼬막 구워주신 사람
큰어머니시고
한 번씩 나 안아보러 오는 우리 엄마에게
덕석에서 늦은 저녁상을 받으며
욕 잘하는 우리 큰어머니
니 털 난 꼬막으로 나왔다고 다 니 새끼냐 하셨을 것 같고
우리 엄마 울고
우리 엄마 울고
털 난 꼬막 목젖에 걸려 넘어가지 않고
ㅡ시집 우두커니(실천문학사, 2009)
이 시가 시인의 투영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들은 곧잘 시의 화자가 시인이라고 믿어 버린다.
시는 사실일까 아닐까...
남사당을 쓴 노천명 시인이 남자가 아니었듯이, 지리산의 봄3 -연하천 가는 길 자아로 등장하는 형님의 고정희 시인이 남자 아니듯이, 애미는 종이었다고 하는 자화상의 서정주 시인도 아비는 종이 아니고 마름이었듯이, 이재무 시인의 감자꽃을 읽은 어느 독자는 시인의 마누라가 석녀라서 아이를 못 낳느냐고 물었듯이
그럼 시는 거짓말일까.
시는 진실이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거짓과 진실의 차이를 알아야겠다.
이 시 또한 박형권 시인의 자아 투영일 수도 있고 간접 경험, 주워 들은 이야기 일수도 있다.
어쨌든 시 한 편에 부모의 연애사를 옛날 동네에서 처녀 총각 눈 맞아 야반도주한 흥미진진하면서도 자신의 성장 스토리가 애잔한 이야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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