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낙관
김장호
밤샘 야근을 끝내고 난곡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낙엽을 털어내며 새벽바람이 일어나고
버스는 봉천고개를 넘어온다
신문 배달 나간 둘째는 옷을 든든히 입었는지……
텅 빈 버스 창가에 부르르 몸을 떨며
엉덩이를 내려 놓는다
방금 누가 앉았다 내렸을까, 연탄 크기만한
흔적이 살아있다
아직 미지근한 온기가 미소처럼 남아 있다
누구일까, 이 차가운 의자를 데운 이는
크기로 보아 술집 여인의 엉덩인가
놀음판에 개평도 얻지 못한 사내의 엉덩인가
아니다, 새벽 장 가는 아지매의 엉덩일 게다
새벽 공사판 나가는 인부의 엉덩일 게다
세상살이 흔들리며 데웠으리라
삶이란 세상에 따스한 흔적 남기는 것
나 역시 그대에게 줄 미소 하나 만든다
새벽에 찍는 하루의 낙관
―시집 「나는 을乙이다」(한국문연,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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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에 대한 시 세 편을 보았다. 하나는 우리 詩 6월호에 실린 복효근의 ‘명작’, 또 하나는 반경환의 명시1권에서 김선태의 ‘수묵 산수’, 그리고 비매품 계간지 詩하늘 2008년 가을호에서 본 김장호 ‘새벽의 낙관’이다. 산수화 하면 언 듯 떠오르는 유사성의 이미지처럼 앞의 두 편은 내용도 소재도 자연에서 가져오고 있다. 그런데 김장호의 낙관 은 다르다.
밤샘 영업에 손님들이 부리는 추태에 지친 술집 여인의 엉덩이가 낙관이 되고 세상에서 이기지 못한 못난 한 사내가 집을 들어가지 못하고 놀음판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가시방석 엉덩이가 된다. 오늘은 행여 운 좋게 일당을 거머쥘 수 있을까 하루의 일자리에 목 메는 일용직 노동자의 한숨의 엉덩이가 되고 있다. 실패하여 지치고 무거운 삶에서 묻어나는 고단한 낙관이지만 흔들리지 않으려고 미소처럼 내려놓는 낙관이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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