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 여자
장정일
어디에 갔을까 충남 당진 여자
나를 범하고 나를 버린 여자
스물세 해째 방어한 동정을 빼앗고 매독을 선사한
충남 당진 여자 나는 너를 미워해야겠네
발전소 같은 정열로 나를 남자로 만들어준
그녀를 나는 미워하지 못하겠네
충남 당진 여자 나의 소원은 처음 잔 여자와 결혼하는 것
평생 나의 소원은 처음 안은 여자와 평생 동안 사는 것
헤어지지 않고 사는 것
처음 입술 비빈 여자와 공들여 아이를 낳고
처음 입술 비빈 여자가 내 팔뚝에 안겨주는 첫 딸 이름을
지어주는 것 그것이 내 평생 동안의 나의 소원
그러나 너는 달아나버렸지 나는 질 나쁜 여자예요
택시를 타고 달아나버렸지 나를 찾지 마세요
노란 택시를 타고 사라져버렸지 빨개진 눈으로
뒤꽁무니에 달린 택시 번호라도 외워둘 걸 그랬다
어디에 숨었니 충남 당진 여자 내가 나누어준 타액 한 점을
작은 입술에 묻힌 채 어디에 즐거워 웃음 짓니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두 사람이 누울 자리는 필요 없다고
후후 웃던 충남 당진 여자 어린 시절엔
발전소 근처 동네에 살았다고 깔깔대던 충남 당진 여자
그래서일까 꿈속에 나타나는 당진 화력 발전소
화력기 속에 무섭게 타오르는 석탄처럼 까만
여자 얼굴 충남 당진 여자 얼굴 그 얼굴같이
둥근 전등 아래 나는 서 있다 후회로 우뚝 섰다
사실은 내가 바랐던 것
그녀가 달아나주길 내심으로 원했던 것
충남 당진 여자 희미한 선술집 전등 아래
파리똥이 주근깨처럼 들러붙은 전등 아래 서 있다
그러면 네가 버린 게 아니고 내가 버린 것인가
아니면 내심으로 서로를 버린 건가 경우는 왜 그렇고
1960년산 우리 세대의 인연은 어찌 이 모양일까
만리장성을 쌓은 충남 당진 여자와의 사랑은
지저분한 한 편 시가 되어 사람들의 심심거리로 떠돌고
천지간에 떠돌다가 소문은 어느 날 당진 여자 솜털 보송한
귀에도 들어가서 그 당진 여자 피식 웃고
다시 소문은 미래의 내 약혼녀 귀에도 들어가
그 여자 예뻤어요 어땠어요 나지막이 물어오면
사랑이여 나는 그만 아득해질 것이다 충남 당진 여자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시집『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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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한 사랑 시, 연애 시, 애정 시는 많다. 그러나 직설적인 연애 시는 그렇게 많지를 않다. 들킬세라 우회적으로 돌려쓰기를 한다. 적나라하게 거북하게 다가오는 노골적인 시도 있다. 이제는 고인이 되셨지만 그런 노골적인 시 하면 마광수 시인을 떠올릴지 모른다. 에로티즘 시로 알려진 가자 ‘장미 여관’으로 한때 세간의 파문을 몰고 오면서 외설 시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 수요도 있고 추종자들도 있어 공연으로 올려지기도 했다. 성을 시로 쓴 시인도 많다. 도발적으로 상큼 톡톡 발랄의 시어를 구사하는 김민정 시인의 어떤 시는 감당하기 어렵고 탁한 시어로 놀라게 하는 김언희 시인의 어떤 시는 신문지를 둘둘 말아 작은 구멍으로 세상을 보는 것같이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런가하면 성을 미적인 감각으로 맛깔나게 소화를 하고 있는 박이화 시인도 있다.
지나친 외설은 천박하고 역겨울 수 있고 혐오스러울 밖에 없다. 그러나 성은 원초적 본능이라는 말처럼 시에 에로티즘이 은근슬쩍 들어가면 호기심의 유발과 함께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오탁번 시인의 걸쭉한 육담의 ‘폭설‘이 그렇고 항간에 떠도는 음담패설을 시화한 ’굴비’에는 웃어도 눈물이 난다는 말처럼 유머 속에 애욕의 해학도 들어 있다
2008년 1월 1월 새해가 밝자 조선일보에서 현대시 100년 기념으로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연재를 시작했다. 박두진 시인의 ‘해’를 1편으로 100편 마지막 편인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가 끝나고 이어서 연속 기획 애송 동시 50편과 9월에는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편도 연재를 했다. 이 사랑시의 해설은 장석남, 김선우 두 시인이 맡았는데 사랑시 추천위원으로는 시단의 원로와 중진, 신예 시인 14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한다.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낸 이근배 오세영 시인, 협회장인던 오탁번 시인을 비롯해 문정희 정호승 이재무 안도현 나희덕 정끝별 장석남 박형준 이병률 김선우 김민정 시인 등이 후보작을 추천했다고 한다. 인류 영원의 주제이기도 한 사랑시는 50편이 아니라 100편을 한다고 해도 차고 넘칠 것이다.
시는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라고 한다. 이재무 시인이 감자꽃은 꽃은 피지만 씨가 없는 것에 착안을 해서 감자꽃을 애를 낳지 못하는 석녀로 비유를 했는데 그 시를 읽은 독자들이 가끔 애가 없느냐를 질문을 한다고 한다. 시가 비록 현실과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화자처럼 자아가 반영되고 투영된 직설적인 시를 쓰기란 쉽지 않다. '충남 당진 여자' 속의 여자는 화자의 이야기든 아니든 고백체로 드러내 놓고 말하지만 누구나 속에 남모르는 첫사랑 하나쯤 담고 살아가기에 은유라는 이름을 빌려서 숨겨진 내 사랑을 알리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선일보 연재 -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1 ~ 50) - 목록과 시>
http://blog.daum.net/threehornmountain/13746512
<사랑 시 - 이수익/이재무/임보//송수권/김명인/김사인>
http://blog.daum.net/threehornmountain/13746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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