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
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를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창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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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의 조용한 곳에 가던가 병원 같은데 갇혀 실컷 책이나 봤으면 좋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2007년 춘삼월 봄이 오기도 전 정말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누가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크다고 했던가. 그 아픈 것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바늘로 콕콕 찌르는 아픔은 아픈 것도 아니다. 송곳으로 쑤신다고 할까, 아니면 불에 달군 윤두로 지진다고 할까. 큰 사고가 나면 왜 기절을 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바람 넣은 튜브처럼 팅팅 부어오른 다리가 며칠 지나 가라앉고 수술을 하고 어느 정도 뼈가 붙어가고 아픈 것도 가시자 그제서야 갇혀있는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3층의 병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일요일이면 만사 제치고 다니던 삼각산(북한산) 산성주능선과 봉우리 바위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릎을 다쳤으니 다시 등산을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었다.
쓰지 않는 다리의 종아리는 만져보면 연두부처럼 물렁물렁해져 있고 한 달 동안 일직선으로 깁스한 다리는 그대로 굳어버려 펴질 것 같지도 않았다. 강제를 무릎을 굽게 하는 기계에 의지하여 물리치료가 시작되었다. 오전 오후 30분씩 재활치료로 차츰차츰 조금씩 무릎이 굽어지고는 있지만 치료를 받고 나면 밥 먹는 거 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그래 이참에 보고 싶던 장편소설이나 보자 해서 조정래님의 태백산맥부터 시작을 했다. 이어서 나온 한강과 아리랑도 다 읽어볼 생각이었다. 생명의 불꽃을 사루며 썼다는 최명희님의 ‘혼불’도 읽고 싶었고 아주 오래 전에 펄벅의 대지를 읽었는데 박경리님의 토지도 읽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태백산맥 열권을 끝낸 후 토지를 펼쳤을 때 티브에서 연속극으로 보던 것과는 달리 낯선 용어로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고 지루하며 눈도 힘도 부쳤다. 장편을 보는 짬짬이 시집도 보았는데 갑자기 시가 더 보고 싶어졌다.
시문학지를 둘러보니 이름도 생소한 문학지들이 많이 보였다. 알고 있는 것이라곤 문학사상과 문학과지성사, 현대문학, 창비 정도였는데 언제 그 많은 문학지들이 생겼는지...창비는 일 년치 주문을 하고 어떤 특징이 있을까 싶어 시와 반시, 다층, 문학 선, 시문학 등을 사서 보았다. 문학지 속에 시집 리뷰를 보면서 시집도 샀는데 언뜻 기억에 떠오르는 시집은 엄원태 시인의 ‘물방울 무덤’, 시집 전체를 꽃시로 엮은 시집 김윤현 시인의 ‘들꽃을 엿듣다’도 있었고 그 중에 김사인 시인의 ‘가만히 좋아하는 시집도 있었다.
김사인 시인은 첫 시집을 낸 후 두 번째 시집이 무려 19년 만에 나왔다고 하는데 그 시집이 바로 ‘가만히 좋아하는’ 시집이다. 이 시집 속에 ‘노숙’ 이란 시가 들어 있는데 이 시를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시 한 편으로 마음을 흔들어놓고 시인의 이름도 각인시켜 준 시집이었다.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는 육신을 얼마나 혹사시키며 살았는지, 잘해준 것도 없으면서 아프면 살뜰히 보살펴주지도 않았다. 왜 아프냐고 투정을 부렸으며 약이나 쑤셔놓고 좀 괜찮다 싶으면 밤낮으로 술에 도락에 괴롭히고 못살게 굴었다. 정말이지 편히 잠재워 주지도 못한 몸, 이제라도 후회하며 반성한다. 막 부려먹어서 미안하다 몸이여...
<몸에게---시
http://blog.daum.net/threehornmountain/13753053
<병에게---시>
http://blog.daum.net/threehornmountain/13747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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