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내 죄 / 이 성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9. 1. 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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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죄

 

이 성


 

비가 오네. 진작 나갈 걸

중엉거린 한 마디에

옆집 담장 너머 피던

꽃 한 송이 떨어졌다나

 

비가 오네. 진작 나갈 걸

중얼거린 한 마디에

조용히 내리던 빗줄기 속에

시퍼런 칼날이 번쩍이고

잠자던 처녀가슴에

천둥 벼락이 떨어졌다나

 

삼도천 건너던 누이

사흘을 울다

길을 잃은 게

내 죄라나

 

비가 오네. 진작 나갈 걸

혼자 중얼거린 것도

때 못 맞추면

바람 없는데 문득

새파란 사과 한 알 떨어진다나

 

 

시집 엘리스 개구리(이든북,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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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오네. 진작 나갈 걸후회하듯 중얼거린 말에 꽃 한 송이 떨어지고 벼락이 떨어지고 길을 잃고 사과가 떨어진 것이 내 죄라니... 문득 김동환의 시 -‘평양성에 해 안 뜬대도/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 -가 떠오른다.

 

 

웃은 죄/김동환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 한 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 주고,

그러고는 인사하기에 웃고 받았지요.

평양성에 해 안 뜬대도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

 

신세기(1938. 3) 수록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한때 내 탓이오 가 화두가 된 적이 있었다. ‘이란 잘못된 일이나 부정적 현상을 야기한 원인이나 까닭이 모두가 나 때문이라는 것이다. 꼭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라할지라도 어떤 인과의 연결고리로 생긴 일이라면 남 탓을 하면서 굳이 변명하거나 발뺌하는 것보다 쿨하게 잘못했다 이해하라 하면 어느 정도 용서가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겠다


  웃는다고 해서 평양성의 해가 해 안 뜰 리 만무하고 중얼거린다고 해서 꽃이 지거나 벼락이 치거나 사과가 떨어지지 않겠지만 네 탓만 하고 모든 것을 아니꼽고 못마땅하게 본다면 웃은 것도 죄고 중얼거리는 것도 죄가 될 수 있겠다. 원인불명을 제공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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