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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자 / 정호순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9. 2. 1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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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여자


정호순



가을날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야금야금 시를 땅 속에 묻는 여자가 있었네

 

자신의 블로그 프로필에

"바람도 없이 떨어지는 꽃잎 같이 없어질 글을 쓰는 여자" 라고

자괴감이 우수에 젖어 늦은 장맛비 내리는데

병원에 입원한다는 짧은 쪽지 한 장 달랑 던지고

가을날 낙엽처럼 홀연히 사라진 여자

 

바람처럼 눈처럼 시라는 이름으로

몇 번의 쪽지를 주고받은

색깔도 음색도 알 수 없는 여자

 

그날 그 시간 그대로 멈춰져 있는 공간 속에

땅으로 스며든 빗물처럼 정지되어 있는 여자

 

몇 년이 흐르고 또 한 해가 지나가는 이 가을

문득 생각이 나 탐문을 하기도 했었는데

지리산 어디쯤에서 요양 중이라 했는데

 

낯선 곳 먼 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것처럼

제 자리로 돌아와 아무 일 없었던 듯

푸른 영혼으로 맑고 깨끗한 시를 쓰면 좋겠네



어떤 여자

 

정호순


 

가을날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야금야금 시를 땅 속에 묻는 여자가 있었네

하루 한 편씩 시를 올리는 카페에

어쩌다 한 번씩 찾아와

사유의 시 한 편 올리던 여자  

 

우연치 않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내 대신 시를 올려 주던 여자

 

내가 목발을 짚고 퇴원했을 때

함민복 시인의 '우산 속으로도 비 소리는 내린다'

시를 마지막으로 올려놓고는

밑도 끝도 없이 병원에 입원한다는

짧은 쪽지 한 장 달랑 던지고

만추의 붉은 낙엽처럼 홀연히 사라진 여자

 

바람처럼 눈처럼 시라는 이름으로

몇 번의 쪽지를 주고받은

음색도 알 수 없는 여자

 

자신의 블로그 프로필에

"바람도 없이 떨어지는 꽃잎 같이 없어질 글을 쓰는 여자" 라고

자괴감이 우수에 젖어 늦은 장맛비 내리는데

지금도 카페엔 마지막 시를 올린

그날 그 시간 그대로의 모습으로

멈춰져 있는 공간 속에 땅으로 스며든 빗물처럼

정지되어 있는 여자

 

몇 년이 흐르고 또 한 해가 지나가는 이 가을에

문득 생각이 나 탐문을 했었는데

지리산 어디쯤에서 요양 중이라던

문자라도 보내주면 위로가 될 거라 했지만

뾰족한 말 찾지 못해 그 마저도 못 했었는데

 

낯선 곳 먼 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것처럼 아무 일 없었던 듯

푸른 영혼으로 돌아와 지리산 계곡 물처럼

맑고 깨끗한 시를 쓰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