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자
정호순
가을날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야금야금 시를 땅 속에 묻는 여자가 있었네
자신의 블로그 프로필에
"바람도 없이 떨어지는 꽃잎 같이 없어질 글을 쓰는 여자" 라고
자괴감이 우수에 젖어 늦은 장맛비 내리는데
병원에 입원한다는 짧은 쪽지 한 장 달랑 던지고
가을날 낙엽처럼 홀연히 사라진 여자
바람처럼 눈처럼 시라는 이름으로
몇 번의 쪽지를 주고받은
색깔도 음색도 알 수 없는 여자
그날 그 시간 그대로 멈춰져 있는 공간 속에
땅으로 스며든 빗물처럼 정지되어 있는 여자
몇 년이 흐르고 또 한 해가 지나가는 이 가을
문득 생각이 나 탐문을 하기도 했었는데
지리산 어디쯤에서 요양 중이라 했는데
낯선 곳 먼 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것처럼
제 자리로 돌아와 아무 일 없었던 듯
푸른 영혼으로 맑고 깨끗한 시를 쓰면 좋겠네
어떤 여자
정호순
가을날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야금야금 시를 땅 속에 묻는 여자가 있었네
하루 한 편씩 시를 올리는 카페에
어쩌다 한 번씩 찾아와
사유의 시 한 편 올리던 여자
우연치 않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내 대신 시를 올려 주던 여자
내가 목발을 짚고 퇴원했을 때
함민복 시인의 '우산 속으로도 비 소리는 내린다' 는
시를 마지막으로 올려놓고는
밑도 끝도 없이 병원에 입원한다는
짧은 쪽지 한 장 달랑 던지고
만추의 붉은 낙엽처럼 홀연히 사라진 여자
바람처럼 눈처럼 시라는 이름으로
몇 번의 쪽지를 주고받은
음색도 알 수 없는 여자
자신의 블로그 프로필에
"바람도 없이 떨어지는 꽃잎 같이 없어질 글을 쓰는 여자" 라고
자괴감이 우수에 젖어 늦은 장맛비 내리는데
지금도 카페엔 마지막 시를 올린
그날 그 시간 그대로의 모습으로
멈춰져 있는 공간 속에 땅으로 스며든 빗물처럼
정지되어 있는 여자
몇 년이 흐르고 또 한 해가 지나가는 이 가을에
문득 생각이 나 탐문을 했었는데
지리산 어디쯤에서 요양 중이라던
문자라도 보내주면 위로가 될 거라 했지만
뾰족한 말 찾지 못해 그 마저도 못 했었는데
낯선 곳 먼 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것처럼 아무 일 없었던 듯
푸른 영혼으로 돌아와 지리산 계곡 물처럼
맑고 깨끗한 시를 쓰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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