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4.19 시 모음 -조지훈/박두진/김수영/신동엽/고은/박봉우/신경림/허의령/민영 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9. 4. 1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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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져 오르는 함성


조지훈


 

네 벽 머리를 두드려 봐도

이것은 꽝꽝한 바윗 속이다.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이 있어도

솟구칠 수가 없구나

민주주의여!

절망하지 말아라

이대로 바위 속에 끼어 화석(化石)이 될지라도

1960년대의 포악한 정치를

네가 역사 앞에 증거 하리라.

권력의 구둣발이 네 머리를 짓밟을지라도

잔인한 총알이 네 등허리를 꿰뚫을지라도

절망하지 말아라 절망하지 말아라

민주주의여!

백성의 잎을 틀어막고 목을 조르면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신봉한다."고

외치는 자들이 여기도 있다

그것은 양의 탈을 쓴 이리

독재가 싫어서 독재와 싸운다

손뼉치다가 속은 백성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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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훈(1920-1968)은 경북 영양 태생으로, 1939년 동인지 「白紙」에 시를 발표함으로써 시작활동을 개시하였다.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집」(1936)을 간행 청록파 시인으로 불린다.  별세 후 「조지훈전집」이 간행되었으며, 이 시는 1965년 사월혁명동지회에서 발행한 『4월혁명』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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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죽음들 앞에서


박두진


 

누가 알리.

선혈로 강을 이뤄

한 바퀴 천천히 지를 띠두른

그 넓들 서로 알고

오늘을 울어 옌을.

 

별빛 그 눈동자들 지금은 하늘엘까?

낭랑한 그 목소리들 지금은 공중엘까?

푸른 그 애띤 넋들 지금은 햇살 속엘까?

바람 속엘까? 떨리는 풀잎

꽃이지는 꽃 나부낌 속엘까?

 

그 착한 얼굴 모습들 지금은 강물 속엘까?

거울로 어리우는 바위 속엘까?

나무 그늘엘까?

잔잔한 호수 속엘까?

그 물 속 거꾸로인 하늘 그림자엘까?

 

알아서 무엇하리.

너희들 뜨건 피와

찝긴 살은 흙거름, 거름 위에 뿌리한.

나무와 풀잎들과 꽃망울과 꽃,

 

죽음들이 잠들은 죽음 위에 서서

피와 살로 기름진 흙을 밟고 서서

우리들 여전히 히히대어 사는 것을

짐승들도 인간들도 어금니를 갈아

피 흘리며 죽어가며 흥성흥성 사는 것을

 

그럴 리.

무엇엔가 그러나 너희들은 살았으리.

너희들 뿌려 흘린

그 뜨거운 붉은 피가 유유한 강이 되고, 그래서 푸르르고

그 빛나는 눈동자들 찬란한 별이 되고, 그래서 총총하고.

그 찢기운 붉은 살은 톡톡한 흙이 되고, 그래서 기름지고.

희디 하얀 백골

뼈가 녹아 샘이 되어, 그래서 샛맑애고  

 

너희들의 숫된 맘은 푸른 바람결,

이름 석잔 바람결,

혼령들은 햇살이 되어

오늘 저 볕 살 속에 살아 있으리.

 

우리들 스스로로 알아지지 못하는

풀포기, 물굽이, 바람결과 가지 끝에

꽃이팔, 모래톱, 양지와 그늘 속에

혼령 속 마음 속에 피 흐름이 있으리.

살음 속에 영원히 잔잔하게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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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두진은 경기 태생으로, 1939년 「文章」지에 시 '낙엽송' '들국화'가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데뷔한 이래 「청록집」「수석열전」 등 많은 시집. 시론집을 낸 바 있다. 이 시는 1962년에 발간된 시집 「거미와 성좌」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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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거대한 뿌리』. 민음사. 1974:『김수영 전집』. 민음사. 1981)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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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은 1921년 서울에서 출생하고 1968년에 별세했다. 1945년 「예술부락」지에 시 '묘정의 모래'를 발표 시단에 등단. 1950, 60년 대를 통하여 참여시의 기치를 높이 들어 문단에 일대 각성을 일깨웠다. 「김수영전집」 2권이 1982년에 간행되었으며, 1960년 6월15일에 지은 이 시는 이 전집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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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 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52인 시집』. 신구문화사. 1967 : 『신동엽 전집』. 창작과비평사. 1975)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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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1932-1969)은 충남 부여 태생으로,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이야기하는 경기꾼의 大地'가 당선됨으로 등단. 장시 '금강', 시집 「아사녀(1963)」 등을 발표. 간행함으로서 참여 시의 차원을 민족적 역사의식에로 심화시켰다. 이 시는 1967년 간행된 「현대문학전집(신구문화사)」 「52인 시집」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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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라 영령이여 새로운 영령이여


고은




차라리 한가닥 공포도 없던 그날의 세종로여 꽉 찬 순결이여

오래인 것의 새로움으로 다시 한번 솟아오른 북악이여

먼 바다여 섬처럼 솟아오르는 아픔의 가슴으로 깨달아라

빗발치는 총탄 앞에서 쓰러진 재 자식들이여

쓰러지며 달려간 피의 자식들이여 역사여

일찍이 그대들의 목숨 없었던들 이 역사 어이했을까보냐

4월이여 조국땅 영산홍이여 가장 아름다운 건 무엇이더냐

너와 나 빛나는 눈동자의 합작이여 엉엉 울어야 하리 살아야 하리

죽음의 자식들이여 청춘이여 어디 있느냐? 이미 넋뿐인 자식들이여

밤하늘에서 대낮의 어둠이며 땅위에선 혁명이거라

가장 아름다운 혁명이여 비로소 이 세상이 역사인 혁명이여

겨레 한 사람 온몸의 8만4천 구멍이 한꺼번에 컹컹 짖는 기쁨이여

오 민중의 수북수북 고봉밥이여 자유여 꽃죽 피죽의 민주주의여

빗발치는 총탄 앞에서 쓰러지면 쓰러뜨리는 독재의 원수여

또는 어머니 또는 순아 잘 있거라 죽어서 하늘처럼 네 곁에 있어주마

죽어서 이 매탄의 질곡 부수고 나가면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이여

오 우리나라여 겨레여 해방의 아우성이여 새 세상이여

4월이여 거리 거리에 틀림없이 쏟아져 나오는 승리의 민중이여 케터필러여

내동댕이쳐진 이승만 동상이여 그러나 사랑하지 않으면 살수 없는 혁명이여

너도 나도 얼싸안고 만조의 물 가득히 맞아들이는 항구여 혁명이여

밤이여 악인 끈질기듯이 밤새도록 정의도 잠들지 않았구나

마산부두의 김주열 송장이여 그 송장에 박힌 총탄으로서의 소년이여

4월18일 안암골이여 이윽고 4월 19일 세종로여

서울이여 불타는 파출소 불더미 신문사 잿더미 무슨 회관을 보아라.

자욱한 화약냄새 듀퐁 최루탄의 눈물 그러나 정든 산천초목의 봄이여

혁명이여 너 무엇이더냐 상전아래 종놈 종년 아니거든 무엇이더냐

혁명이여 너로 하여금 역사 있거라 역사의 청춘 있거라

2백 영령이여 6천의 부상자여 동지들이여 자유의 자식들이여

역사여 뜨거운 가슴 이룽이룽 타오르는 전 세계의 그날이여

새로운 만인의 날이여 역사 위해서라면 4월이여 그날 너 돌아오라

날마다 20년마다 그날로 돌아오라 쌓인 원한 어쩌란 말이냐

오 청춘의 혁명이여 혁명의 청춘 역사의 청춘이여

5천년의 황톳땅 쓰라린 비바람에도 숫처녀인 청춘이거라

차라리 휘날리는 네 치맛자락 피 묻은 깃발로 펄럭이거라

4월이여 너 아니었다면 여기에 무슨 진리 무슨 꽃이 피겠느냐

꽃이여 총칼 없이도 무지막지 돈 없이도 오 빈 주먹 혁명의 문화여

4월이여 4월의 싸움과 죽음이여 승리여 허공 속의 크나큰 고통이여

오늘이거라 돌아오라 20년 전의 청춘 오늘이거라 돌아오라

싸워서 원수와 하나로 죽어간 형제들이여 잚은 짐승이여 풀들이여

 

그대들이 꼭 쥐고 죽었던 그 굳은 손안에 든 힘 이제 어디 있느냐

두 눈 부릅뜨고 소리지르며 달려가던 그 번개 칼의 힘 어디 있느냐

이 세상 제일의 일 위해 역사의 힘이여 민중의 힘이여 돌아오라

4월이여 하늘을 상대로 대지를 상대로 싸우는 병사여 노래의 자식들이여

4월이여 역사의 날  피로 노래하는 예술이여 붉은 노을의 애미애비여

오 모든 진리는 끝내 피의 진리 피로서 펼펄 살아서 뛰노는 진리거라

4월이여 오 4월의 꿈이여 그 낮의 대낮인 진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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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 은 전북 군산 태생으로, 1951년 입산하여 12년간 승려생활을 하다가 1958년 「현대문학」에 시 '눈길' 등을 발표함으로서 등단. 「새벽길」(창작과비평사, 1978) 등 시집 여러편과 비평집 등이 있다. 이 시는 1980년 4월8일 「고대신문」에 419 스무 돌 기념시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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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도 피면 무엇하리


박봉우



4월의 피바람도 지나간

수난의 도심은

아무렇지도 않는

표정을 짓고 있구나

 

진달래도 피면 무엇하리

 

갈라진 가슴팍엔

살고 싶은 무기도 빼앗겨 버렸구나.

 

아아 저녁이 되면

자살을 못하기 때문에

술집이 가득 넘치는 도심.

 

약보다도

이 고달픈 이야기들을 들으라

멍들어 가는 얼굴들을 보라.

 

어린 4월 피바람에

모두들 위대한

훈장을 달구

혁명을 모독하는구나.

 

이제 진달래도 피면 무엇하리.

 

가야 할 곳은

여기도,

저기도, 병실,

 

모든 자살의 집단, 병든

기를 올려라

나의 병든 데모는 이렇게도

슬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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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우는 광주 태생으로 1956년 시 '휴전선'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됨으로써 등단. 이 시는 1961년 3월9일 자 조선일보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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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시골에 와서


신경림




밤새워 문짝이 덜컹대고

골목을 축축한 바람이 쓸고 있다.

헐린 담장에 어수선한 두엄더미 위에

살구꽃이 피고 어지럽게

피어서 꺾이고 밟히고

그래도 다시 피는 4월.

 

나는 남한강 상류 외진 읍내에 와서

통금이 없는 빈 거리를 헤매이며

어느새 잊어버린

그날의 함성을 생각했다.

티끌처럼 쏠리며 살아온 나날

들처럼 뒹굴며 이어온 세월,

 

다시 그날의 종소리가 들리리라고

아무도 믿지 않는 밤은 어두웠다.

친구를 생각했다. 찬 돌에 이마를 대고

깊은 잠이 들었을 친구를

그 손톱에 배었을  핏자국을

 

4월이라도 바람은 그냥 차고

살구꽃이 피어도 흐느낌은 더 높은데

축축한 바람은 꽃가지에 와 매달려

친구들의 울음처럼 잉잉댔다.

진달래도 피고 개나리도 피고

꺾이고 밟히고 다시 피는 4월

밤은 좀체 밝아오지 않았다.

 

 

-시집『새재』(창작과비평사, 1979)
-시전집『신경림 시전집 1』(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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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림은 충주태생으로, 1956년 문학예술지에 새 '갈대' 등으로 이한직의 추천을 받아 등단. 이 시는 「주간시민」(1977)에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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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알아진 베고니아 꽃


허의령


그러니까......

내가

그날

그 무렵

어쩌다 서울 장안에 있었고

물샐 틈 없이 겨눈 어깨가

하늘을 밀고 가던 날에

말이다.

 

포연에 서린 자욱

짓궂게도 아물지 않아

엘레지에 파묻힐 때

아니

태풍을 맞서고 나선 등불마냥

내 숨결이 낮아질 때

장안이 들끓어

하늘이 내려앉고

그래서는 안 될 얼굴끼리

불장난이 있을 때

말이다.

 

그날 밤

병원문이 터져 나가고

십대의 꽃송이들이

가닥가닥 찢긴 채

아직은 꺼져 가는 체온을 걷어 가며

곁에와 나란히

자리를 마련하던 날에

말이다.

 

누가 놓았는지 모르지만

병실의 꽃

그것이 베꼬니아라 하기에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고

손을 내밀어

씨종자 가리듯

유심히 보고 또 보고

했으니 ......

그 꽃이 사철 피는

 

베꼬니아라 하기에.

 

선혈같이 붉은 빛 간직타 못해

그냥 쏟아버리고

도려 핏빛을 아신 듯한

그 꽃이 말이다.

 

아기의 입술마냥

금붕어가 내품는 물거품마냥

피었다가 제 발 밑에 소롯이 고여가는

귀엽기만한 그 꽃이

말이다.

 

화분에 담긴 그 꽃이

베꼬니아라 하기에

마음 가다듬어 보고파지며

어느 새 눈시울이 뜨거웠음은

4월에 알아진 때문이라.

 

그러니까.......

내가

그날

그 무렵

어쩌다 서울 장안에 있었고

물샐 틈 없이 겨눈 어깨가

하늘을 밀고 가던 날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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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의령은 전남 순천 태생으로, 1961년 사상계 제2의 신인 문학상을 수상으로서 등단했다. 이 시는 그 때의 당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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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 울음 

 

민영

 

저 이름 없는

풀포기 아래

돌멩이 밑에

잠 못 이루며

흐느끼는

귀뚜라미의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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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영은 강원도 철원 태생으로, 1959년 현대문학지에 시 '동안' 등이 추천됨으로서 등단. 이 시는 21인 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뷸로」(1982)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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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교정

 

황명걸


모두들 어디가고

빈 교정에

개나리만 만발했나

 

봄볕 가득한

빈 잔디

빈 벤치

 

먼지 앉은 교실의

책상 걸상들이

임자를 보고 싶다네

 

어디 갔을까

무엇 하고 있을까

친구들은 지금

 

집에 있어도 편잖고

산에 다고 언짢아

생각느니 친구들뿐

 

사랑을 갓 배울 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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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명걸은 평양 태생으로, 1962년 자유문학지에 시 '이 봄의 미아'가 추천됨으로서 등단. 이 시는 월간중앙 1975년 6월 호에 발표되었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