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감자시 모음 -이재무/강해림/손택수/정일근/안도현/황학주/유형진/길상호/박성우/박진형/이순주...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9. 4. 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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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


이재무

 

 

차라리 피지나 말걸 감자꽃
꽃피어 더욱 서러운 女子
자주색 고름 물어뜯으며 눈으로 웃고
마음으론 울고 있구나 향기는,
저 건너 마을 장다리꽃 만나고 온
건달 같은 바람에게 다 앗겨버리고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비탈
오지에 서서 해종일 누구를 기다리는가
세상의 모든 꽃들 생산에 저리 분주하고
눈부신 생의 환희 앓고 있는데
불임의 女子, 내 길고긴 여정의
모퉁이에서 때묻은 발목 잡고
퍼런 젊음이 분하고 억울해서 우는
내 女子, 노을 속 찬란한 비애여
차라리 피지나 말걸, 감자꽃
꽃피어 더욱 서러운 女子
 

 


-시집『위대한 식사』(세계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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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깎으며

강해림 


검은 비닐봉지가 주둥이를 열자
자주빛 싹이 난 감자가 쏟아져나왔다
섣불리 불려나온,
환한 세상을 향한 강한 불신을 담은 눈빛들이 노려본다
성난 뿔 같다
울컥울컥 빈속에 들이켰을 바람의 향기가 아리다

거무튀튀한 흙빛을 띠고 쭈굴텅해진 몸뚱아리
어디, 저리 희멀건 속살 감추어 도었을까
쓸쓸한 앙금들
가라앉고 부유하던 속앓이로 홀로 여위어갔을

어둠 속 즐겁게 굴러가던
짱짱한 울음 하나가 허벅지 깊숙이 지뢰를 묻듯
조심조심 독을 심고
허공의 길 향해 무섭게 싹을 틔웠던 것

껍질을 벗긴다
그는 순순히 성난 뿔을 거세당한다
허옇게 드러나는 비의(悲意),
붉은 피가 스민다
성난 뿔을 잘라내고 그가 걸어간 마음의 유적
은밀한 흔적까지 도굴하려다 검지손가락을 베인 것이다

문득
몸속 길 하나가 들어선다
퍼져나가는, 감자의 독 


시집구름寺院 』(디지탈현대시,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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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을 따다

 

손택수

 


주말농장 밭고랑에 서 있던 형이 감자꽃을 딴다
철문 형, 꽃 이쁜데 왜 따우
내 묻는 말에
이놈아 사람이나 감자나 너무 오래 꽃을 피우면
알이 튼실하지 않은 법이여
꽃에 신경 쓰느라 감자알이 굵어지지 않는단 말이다
평소에 사형으로 모시는 형의 말씀을 따라 나도 감자꽃을 딴다
꽃 핀 마음 뚜욱 뚝 끊어낸다
꽃시절 한창일 나이에 일찍 어미가 된 내 어머니도
눈 질끈 감고 아까운 꽃 다 꺾어냈으리라
조카애가 생기고 나선 누이도
화장품값 옷값을 말없이 줄여갔으리라
토실토실 잘 익은 딸애를 등에 업고
형이 감자꽃을 딴다
딸이 생기고 나선 그 좋은 담배도 끊고
술도 잘 마시질 않는 다는 독종
꽃 핀 마음 뚜욱 뚝 분지르며
한 소쿠리 알감자 품에 안을 날들을 기다린다

 

 


 시집『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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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색 감자를 캐면서

정일근


꽃은 허공 가지에서 지고
슬픔은 땅속 뿌리로 맺혔느니
여름날 자주색 감자를 캐면서
뿌리에 맺힌 자주색 슬픔을 본다
로에게 답장을 쓸 것인가에 대해
여름 내내 생각했다, 그 사이
자주색 감자꽃은 피었다 지고
자주색 감자는 굵어졌다
감자를 캐느라 종일 웅크린
늑간이 아프다, 웅크린 채 누군가를
기다렸던 나도 한 알의 아픈 감자였다
사람의 사랑도 자주색 감자 같아
누가 나의 뿌리를 쑥 뽑아 올리면
크고 작은 슬픔 자주색 감자알로
송알송알 맺혀 있을 것 같으니 



 ―월간『문학사상』(2004년 2월호)

 ―시집『착학게 낡은 것의 영혼』(시학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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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감자


안도현

 


삶은 감자가 양푼에
하나 가득 담겨 있다
머리 깨끗이 깎고 입대하는 신병들 같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중이다
감자는 속속들이 익으려고 결심했다
으깨질 때 파열음을 내지 않으려고
찜통 속에서
눈을 질끈 감고 익었다
젓가락이 찌르면 입부터 똥구멍까지
내주고, 김치가 머리에 얹히면
빨간 모자처럼 덮어쓸 줄 알게 되었다
누구라도 입에 넣고 씹어봐라
삶은 감자는 소리 지르지 않겠다고
각오한 지 오래다

 

 

 
월간『좋은 생각』(2009년 7월호)

 ―시집『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현대문학북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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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 따기

 

황학주   


 
네가 내 가슴에 가만히 손을 얹었는지 흰 감자꽃이 피었다
폐교 운동장만 한 눈물이 일군 강설(降雪)하얗게 피었다
장가가고 시집갈 때
모두들 한 번 기립해 울음을 보내준 적이 있는 시간처럼


우리 사이를 살짝 데치듯이 지나가 슬픔이라는 감자가 달리기 시작하고
따다 버린 감자꽃의 내면 중엔 나도 너도 있을 것 같은데
감자는 누가 아프게 감자꽃 꺾으며 뛰어간 발자국


그 많은 날을 다 잊어야 하는, 두고두고 빗물에 파이는 마음일 때
목울대에도 가슴에도 감자가 생겨난다
감자같이 못생긴 흙 묻은 눈물이 넘어온다


우리 중 누가 잠들 때나 아플 때처럼
그 많던 감자꽃은 감자의 안쪽으로 가만히 옮겨졌다

 

 

 

ㅡ월간『유심』(2014년 5월호)
ㅡ계간『시와표현』(2014년 여름호)

ㅡ시집『사랑할 때와 죽을 때』(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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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유형진

  

 

  식탁 위에 싹 자란 감자 하나. 옆에는 오래전 흘린 알수 없는 국물 눈물처럼 말라 있다 멍든 무릎 같은 감자는 가장 얽은 눈에서부터 싹이 자란다 싹은 보라색 뿔이 되어 빈방에 상처를 낸다 

 

  어느 날 내 머릿속 얽은 눈이 저렇게 싹을 틔운다면?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보자기는 가위를 가위는 바위를 바위는 보자기를 이기지 못하지 숨바꼭질 술래를 정하면서 아이들은 삶의 부조리를 배운다 무궁화꽃이 아무리 피어도 술래는 움직이지 못한다 얼마나 오래된 것들을 저장해야 저렇게 동그래질까? 추억은 때로 독이 되어서 요리할 때는 반드시 잘라내야 한다 싹이 틀 때 감자는 얼마나 아플까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시집피터래빗 저격사건』(랜덤하우스중앙,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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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의 몸 


길상호


감자를 깍다 보면 칼이 비켜가는 
움푹한 웅덩이와 만난다 
그곳이 감자가 세상과 만난 흔적이다 
그 홈에 몸 맞췄을 돌멩이의 기억을 
감자는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벼랑의 억센 뿌리들처럼 마음 단단히 먹으면 
돌 하나 깨부수는 것 어렵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뜨거운 하지夏至의 태양에 잎 시들면서도 
작은 돌 하나도 생명이라는 
뿌리의 그 마음 마르지 않았다 
세상 어떤 자리도 빌려서 살아가는 것일 뿐 
자신의 소유가 없다는 것을 감자의 몸은 
어두운 땅속에서 깨달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웅덩이 속에 
씨눈이 하나 옹글게 맺혀 있다 
다시 세상에 탯줄 댈 씨눈이 
옛기억을 간직한 배꼽처럼 불거져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독을 가득 품은 것들이라고 
시퍼런 칼날을 들이댈 것이다 



―시집오동나무 안에 잠들다』(문학세계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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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감자꽃 


박성우


자주 보라 자주 보라
자주 감자꽃 피어 있다
일 갈 적에도
마을회관 놀러 갈 적에도
문 안 잠그고 다니는 니 어미
누가, 자식 놈 흉이라도 볼까봐
끼니때 돌아오면
대문 꼭꼭 걸어잠그고
찬밥에 물 말아 훌훌 넘기는
칠순에 닿은 니 홀어미나
자주 보라 자주보라,
자주 감자꽃 피어 있다
어머니가 챙겨 싸준 감자
쪼글쪼글 썩혀서 버린 화단에
자주 감자꽃은 피어,
꽃핀 나 볼라 말고
쪼글쪼글 오그라드는
니 홀어미나
자주 보라 자주 보라



-시집『가뜬한 잠』(창비시선.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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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든 감자는 초록뿔을 밀어올린다

박진형


먹다 만 감자를 라면 상자에 넣어
베란다에 내어다 놓고
겨울 내내 잊고 살았다
아무도 몰래, 침침한 시간 속에서
멍든 감자는 초록뿔을 밀어 올렸다

쥐는 뿔이 없다
멍든 감자에게는 뿔이 있다
푸른 싹을 밀어 올리는 영혼은
초록의 감자쥐다

칼로 두개골을 잘랐을 때
상한 시간의 냄새를 풍기며
비로소 감자쥐는 울었다

초록뿔의 울음이
지상에 널린 비천한 마음을
가만가만 들어 올린다



-시집『몸나무의 추억』(민음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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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캐다

이순주


비포장 도로변 밭 이랑에
씨감자 같은 아낙들
두툼한 살집 땅 위에 접으며
이야기 싹을 튼다
옹이진 손아귀마다 구부정한 날들 닮은
호미자루 들려 있다
덩굴진 감자 줄기를 잡아 훠이 훠어이
어둔 시간을 걷어내며 이야기꽃을 피원낸다
씨눈 터지는 소낙비 같은 웃음소리는
좀처럼 펴지지 않는 -
저런 삶 같은 세월 밀어낸다
흙의 맥을 짚어가며 호미질로 살살 흙을 발라 뿌리 잡아당기면
큰 놈 작은 놈 할 것 없이 한 무더기 달려 나온다
- 이놈들 다 품 안에 자식이여
기껏 키워 뿔뿔이 흩어지면 남남이지
한 줄기에 주렁주렁 매달리던 이야기들 와그르르,
떨어져 나와 밭이랑에 수북이 쌓인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완행버스 한 대 잠시 멈췄다
더딘 시간을 끌고 덜컹덜컹 지나가면 어느덧
生의 저편에 완강히 버티고 앉은 아낙들이 보인다




-격월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200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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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정종목


호밋날도 쉬어가던 꽃망울 속 줄기 아래

식솔처럼 올망졸망 영그는 고난이 있었습니다.



-시집『복숭아뼈에 대한 회상』(창작과비평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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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의 이력


강동수

 

 

생전에 어머니가 가꾸었던 앞밭에서

감자를 캔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싹을 틔우던 어린것들

주인을 잃고 시들어진 줄기를 걷어낸다

호미가 지나갈 때 주렁주렁 매달려 나오는

어머니의 세월

감자도 이력이 있어 모양을 갖추었다

작은 근심 큰 근심이 같이 매달려 나온다

가끔 검게 타들어간 어머니의 가슴이 세상을 향해

얼굴을 내민다

암덩이가 몸 속에서 자라듯이

해를 보기 전 알 수 없는 감자의 이력

 

어둠을 안고 땅거미가 몰려올 때까지

눈물같은 세월을 캔다

 

 

 

―구상솟대문학상 제14회 본상수상작『솟대문학』(201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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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캐는 유월에

 

박칠근

 

 

감자를 캐고 나면 유월도 다 간다

상처난 生이 땅속에서 무던하다

감자를 캐면서

유월의 깊은 곳까지 헤집는다

데워진 대지 위에

한 생애의 자태姿態는 탐스럽다

 

감자를 캐는 날은

유월의 속살에 닿는 날

땅속의 깊은 어둠까지 캐다 보면

한 해의 맨발이 다 보인다

 

아직 기다려야만 하는 날들

호두나무 그늘의 상흔은

빗각을 지우지 못하고

나의 유월은 설익은 과일처럼 풋내만 물씬 풍긴다

감자의 아문 상처가 풍요로운 유월

더불어 움질거린다. 반세半歲의 다른 기운이.

 

 

-시집 『공중정원』(한국문연,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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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먹습니다 

 

윤이산 

 

 

감자를 먹습니다.

또록또록 야무지게도 영근 것을 삶아놓으니

해토解土처럼 팍신해, 촉감으로 먹습니다.

서로 관련 있는 것끼리 선으로 연결하듯

내 몸과 맞대어 보고 비교 분석하며 먹습니다.

감자는 배꼽이 여럿이구나, 관찰하며 먹습니다.

그 배꼽이 눈이기도 하구나, 신기해하며 먹습니다.

돌멩이처럼 단순무식해 보이지만

어쩌면 지구인보다 더 지능이 발달한

외계생명의 머리통일지도 모르겠다, 상상하며 먹습니다.

호미에 쪼일 때마다 눈이 더 많아야겠다고

땅 속에서 캄캄하게 울었을,

길을 찾느라 여럿으로 발달한 눈들을 짚어가며 먹습니다.

용불용설도 감자가 낳은 학설일거라, 억측하며 먹습니다.

나 혼자의 생각이니 다 동의할 필요는 없겠지만

옹심이 속에 깡다구가 들었다는 건

반죽해 본 손들은 다 알겠지요.

오직 당신을 따르겠다*는 그 일념만으로

안데스 산맥에서 이 식탁까지 달려왔을 감자.

몸값 제대로 못 받고도 이 땅의 허기를 먹여 살린,

감자가 알을 낳고 낳고 또 낳고…… 자꾸 자꾸 알을 낳고……

가히 낳고복음福音이라 할만한, 감자의

줄기를 당기고 당기고 또 당기고…… 끝까지 당겨보면

열세 남매로 골병 든 바우 엄마, 내 탯줄을 만날 것도 같아

보라 감자 꽃이 슬퍼 보인 건 그 때문이었구나.

쓸쓸에 간 맞추느라 타박타박 떨어지는

눈물을 먹습니다. 


* 감자꽃의 꽃말.

 


―계간『다층』 (201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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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밭  


박정수

 

 

자주꽃 핀 자리

해마다

젖은 기운이 거듭되는 고집을 살찌우는 그곳

바람이 타들어간 흙 속에서 감자알을 파헤친다

붉은 흙들을 하나하나 털어내면서

자주감자를 심고서 떠난 그녀

함구된 서늘함이 나뒹구는 밭머리에 앉아

한 줌의 사연을 쥐어본다

어느 날이든 해가 기우는 쪽은 그리움 쪽

고랑 밖에 쌓여가는 종이박스에서

어느 죽음의 기억을 보았다

그 기억을 봉하며 북망산만큼 파헤쳐진 감자밭,

마음의 빈터만 한참이고

녹말기 묻은 칠월의 바람은

푸른 속도로 저녁 저수지를 건너가고 있다 




―시집『봄의 절반』(천년의시작,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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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먹는 저녁

 

원무현

 

 

대처에 나간 자식들 모여서
방금 쪄낸 감자를 먹는다
둥글둥글 실한 수확물이 김을 뿜어낸다
척박한 땅이지만
올망졸망 어린 것들
더우나 추우나 내 몸인 듯 건사한
흙의 뜨거운 호흡이 백열등 불빛 아래서 꿈틀거린다
어머니가 치마를 끌어내려
정맥이 불거진 야윈 종아리를 감추는 이 저녁이 지나면
우리는 어머니의 감자밭을 밟으며 돌아가야 한다
잠시 호미를 놓고 온 너와 나의 논밭으로 가야 한다.

 


-시집  『홍어』(한국문연,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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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감자를 보는 다섯 가지 방법 

최승헌

 


1

녹색빛깔을 띄며 시들어있는 감자를 깎다가

문득 탱탱하게 여물었던 청춘의 흔적을 본다

고였다 빠져 나가는 건 빗물만은 아니다

생이 몰고 오는 것은 처음부터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

다만 그 흑심을 몰랐을 뿐

오고 가는 것이 저렇게 헐겁게 만들어 놓았다

 

2

뼛속까지 어둠을 끌어와 오염 시킨 건 폭우였다

두들겨 맞고 터지면서 맹렬하게 살기엔 버거운 것이 많다

여기저기 움푹 패인 골짜기마다 환골탈퇴하지 못한

몸의 질서들이 낳은 생의 주름들,

나를 눅눅한 거리로 내몰았던 배후세력이다

 

3

먼 길이라 생각했다

꽃망울 터트리며 활개 치는 봄 산의 만행漫行을 끝내고 돌아와

칠흑 같은 어둠속, 내 안에 틀어박히기 전까지는

 

4

어두운 곳은 무덤처럼 제 몸을 파묻어보면

그 고통의 싹이 얼마나 피었는지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푸르게 뻗어나가는 저 튼튼한 비명이

실은 내 배꼽 속에서 빠져나온 생의 덫 이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미 오래전에 죽음을 삼켰음에도 아직 통증이 남아있다

 

5

아무 것도 나를 몰락시키지는 못했다

이 질긴 명줄을 붙들고 있는 한, 생은 여전히 일방통행이다

고통은 처음부터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지만

나는 시간 속에 흘러갔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착각 이었다

 



―계간『다층』 (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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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박숙이



감자를 깎으며 알았습니다

감자는, 감자의 눈이 잘 발아한 만큼 감자가 달린다는 걸,


발아란 싹이 튼다는 뜻인데

감자 역시도 우리 처음 만날 때처럼

눈에서 먼저 사랑이 은근히 싹튼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눈에서 먼저 사랑이 파랗게 싹튼 후로는

흙에 스며들어

그 사랑이 둥글게 둥글게 옹골차게 완성될 때까지는


눈을 감자 눈을 감자

있는 눈도 없는 척

봐도 못 본 척,

하여, 지금 눈앞의 감자가 눈을 적당히 감고 있습니다


바람 앞에서도 눈 감고 돌부리 앞에서도 눈 감고

어둠속에서도 눈 감고 웅덩이 속에서도 지긋이 눈 감자고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마음으로 다짐하고 또 실행했으므로

우린, 여기까지 넌출넌출 둥글게 온 것입니다


감자는, 여러 개의 눈으로 자신을 과묵히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아 아 둥근 삶이란 조용히 눈 감을 줄 아는 것이었습니다


 

 

―계간『시안』(201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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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고 붉은 감자꽃이 필 때

 

  이승희

 


  햇살의 애를 배어,
  석 달 열흘을 보채는 햇살의 마음을 배어
 

  땅 속 깊은 곳에 흰 등(燈)을 걸어두고
  날마다 그리움의 신방(新房)을 차렸구나.
  오, 어여뻐라
  이 죄 없는 사랑 앞에 나는 무릎 꿇고 운다.
  이 모든 비밀을 가슴에 묻고
  부풀어 오르는 뜨거움을 한칼씩 베어내며 살았을
  이 물기 가슴에
  엎드려 나는 오래 운다.
 

  초승달이 보름달로 옮겨지던 그 저녁이었구나, 까닭도 없이 가슴이 터질 듯하던 그 밤이었구나. 열손가락을 다 비추고도 남던 그 달빛 아래서 몸 풀었던 게구나. 수천수만의 강줄기가 내게로 와 노래 불렀고, 낮고 오랜 기다림의 편지가 결국 네게 닿았구나. 그랬니? 그랬었구나, 내 눈물 자꾸 뜨거워지고, 푸른 행성이 지나며 둥글게 네 신방을 가려주었던 게구나.
 

 

 

-시집『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창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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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윤후명




새싹 난 감자를 땅에 묻었다

새싹이 무섭게 나를 본다

감자는 무섭다

끼니마다 감자를 먹던 시절이 나타난다

그 시절을 살아남아 여기까지 온 것

감자 같은 과거

내가 아닌 나를 보는 두려움

그리움으로 위장한 나는

변복을 하고 그 시절로 간다

들키는 순간 나는 스캔되어

과거에 남고 원본은 폐기될 터

주문진 가는 길 감자밭 가에 서서

흰 꽃 보라 꽃을 헤아려본다

빡빡머리 의용군들이 지나가던 길에 핀

흰 꽃 보라 꽃 

 


—시집『쇠물닭의 책』(서정시학,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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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캐며


임세한

 

 

넓고 가파른 밭
익모초와 바랭이가 시들시들 조는 한낮
어머니, 흰 수건 머리에 두르고 뜨거운 고랑에 오른다
무딘 호미의 날이 흙덩이를 뒤집으면
하얗고 통통한 감자알들이 밭고랑에 툭툭 불거졌다


주르르 흘러내리는 등짝의 땀이
바작바작 타들어가는 입술이, 중얼중얼 감자 줄기를 캐낸다
입속에서 툭툭 불거지는 감자알들을 뱉어놓는다
더위에 지친 대추나무를 바람이 흔들고 가면
은빛 팔랑대던 잎들이 어머니 얼굴 위로 쏟아져 내렸다
굵고 실한 놈으로 가득 채우던 싸리나무바구니
어머니가 지나간 고랑마다 초여름이 푸르게 길을 놓는다


저것들,
밭고랑에 넘쳐나는 눈물의 탯줄을 자른
희고 통통한 감자들, 저들을 키운 것은 땅이 아니라
날마다 휘어지던 허리의 통증이라는 것을
어머니 종아리레 퍼렇게 내비치던 거미줄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그해 유난히 무덥던 하지 무렵엔
벗겨진 정수리마다 자글자글 들끓던 태양이
야윈 어머니 등짝을 빨갛게 태웠던 것도

 

 

 

<2012 제4회 천강문학상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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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감자


전윤호
 

 

안주로 작은 감자가 나왔다

단골이라고 주인이 덤으로 준

검게 탄 자국이 있는 감자

쥐어보면 따뜻해서

선뜻 껍질을 벗길 수 없다

혼자 술 마시는 저녁

취하면 큰소리로 전화하는 사람들의

소주보다 차가운 입술이 부럽다

함부로 뚜껑을 날리며 병을 따고

죄 없는 젓가락을 떨어뜨리면

새 걸로 바꿔달라는 사람들이 두렵다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생각하며

내 심장은 망설이며 뛰고

비 없이 흐리기만 한 여름

가뭄 속에서

감자야 난 잘 살고 있는 걸까

 

 

 

―계간『시인세계』(201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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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감자 꽃 생각


한영옥
 

 

계란 꽃은 살그머니  

달걀 터뜨려 놓은 것 같고

삿갓버섯은 넉넉히

김삿갓 쓰던 그 삿갓 같고

씀바귀 이파리는 슬며시

입 속에 넣어보면 진저리나던데

어째서 사람 맘은 더듬을수록

캄캄하기만 한 것이냐 손사래 치면

그러다 제 얼굴 때리겠다는 것

이 겨울도 겨울 모르겠다는 듯

푸릇푸릇한 사철나무 아래서

잔뜩 붉어가는 네 面相은

사철나무 꽃 결코 아닐 것이니

저만치서 코딱지 꽃처럼 훌쩍이다

내년 여름께는 자주 꽃대 쑥 올리고

캐보나 마나 자주감자로 잘 영글어라.

 

 

 

―격월간『시사사』(201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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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감자꽃 필 무렵 

 

곽재구

  

  

왕대를 엮어 만든 그 집의 사립문 앞에는

윤사월 내내 돼지감자꽃 환하게 눈 트여

숙맥인 노란 꽃 앞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 하염없이 나눌 만했다

사립을 매단 돌각담 한 귀에는

초록색 페인트가 벗겨진 편지함이 기우뚱 매달려 있는데

해질 무렵 갈대밭을 헤매다 온

붉은머리오목눈이 한마리가

편지함 안으로 쏙 들어가는 것이었다

 

  

 

―시집『와온 바다』(창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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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오의 감자

 

 

   윤재철

 

 

   텔레비전을 통해 본 안데스산맥

   고산지대 인디오의 생활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쫓겨

   깊은 산 꼭대기로 숨어든 잉카의 후예들

   주식이라며 자루에서 꺼내 보이는

   잘디잔 감자가 형형색색

   종자가 십여 종이다

 

   왜 그렇게 뒤섞여 있느냐고 물으니

   이 놈은 가뭄에 강하고

   이 놈은 추위에 강하고

   이 놈은 벌레에 강하고

   그래서 아무리 큰 가뭄이 오고

   때아니게 추위가 몰아닥쳐도

   망치는 법은 없어

   먹을 것은 그래도 건질 수 있다니

 

   전제적인 이 문명의 질주가

   스스로도 전멸을 입에 올리는 시대

   우리가 다시 가야 할 집은 거기 인디오의

   잘디잘은 것이 형형색색 제각각인

   씨감자 속에 있었다

 

 


  고미석의 詩로 여는 주말『동아일보』 (2014년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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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감자

 

이하석

 

 

1

왜 잔인한 기억의 흙들에 뿌리 내려 저리 퍼렇게 우거질 때까지 슬금슬금 밭떼기 가에서 솟아오르더니
여름오기 전 못돈 질문처럼 숲을 이룬다

 

2

여름이 지쳐갈 무렵 노란 꽃들이 숲의 상부에 피어나 마구 주위를 살핀다. 자신의 뿌리 감추려 눈치
보는 걸까? 그 뿌리들이 여전히 주점들에 닿아 있다면 가을에 밭주인은 울퉁불퉁하게 뭉쳐진
덩어리들을 캐내면서 문득 새로 드러나는 대답의 뼈들인가 싶기도 하리라.

 

3

돼지감자 뿌리는 당뇨 등에 좋단다. 주검들이 북돋워서 무성하게 했다면 저 숲 같아 엎어 그 뿌리 맺힌
응어리들을 수확한 게 내 트라우마인 그리움의 치료약이 되기도 할까? 뚱딴지* 같으니라구? 글쎄,
저것들 점점 더 번져나가 총살한 이들 파묻은 언덕 덮은 것 보라구. 그게 자연스럽다면 숨기려는 게
아니라 보듬는 것 아니겠어?

 

* 돼지감자의 다른 이름

 


 ―월간『유심』(201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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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캐기

 

박성우

 

 

꿩알이 놓여 있던 주위는

씨알이 좋아도 감자를 캐지 않았다

 

새참 시간이다

한바탕 감자를 캐던 어머니들이

호미를 놓고 둥그렇게 모여 앉는다

포장하던 아버지들도 저울질 멈춘다

양동이에 미지근한 막걸리 붓고

박카스 다섯 병도 부어 휘휘 젓는다

 

멀리서 보면 감자 한 무더기로 보일

어머니들과 아버지들,

막걸리로 허기진 배 채운다

연거푸 받은 술에 취기가 올라온 나는

풀밭에 드러눕는다 슬슬 잠이 오는데,

어른들은 자리 털고 일어나 감자를 캔다

 

트럭에 감자 싣는다

비가 올 것 같으니 얼른 마무리하자 하신다

농사나 짓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목구녕 안쪽으로 쏘옥 들어간다

 

하루 품삯으로 받은 햇감자 두 상자,

불룩하게 밀려나와 터질 것 같은 배를

테이프가 가까스로 누르고 있다

 

 

 

-시집 『가뜬한 잠』(창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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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정이랑


저녁 반찬으로 감자뽂음이 먹고 싶어졌다
우유빛 살결에 짭짤한 소금을 뿌려
흰 쌀밥과 걸쳐 놓고 싶어졌다
퇴근 길 한 봉지를 껴안고 돌아왔다
얼른 속살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한 알 한 알 외투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앗! 다 벗겨낸 감자의 속마음
여기 저기 멍들고 썩어 있기까지 했다
감자는 얼마나 가슴 졸였을까
들키지 않고 여기까지 오는 시간을,
감자는 얼마나 기다렸을까
삶은 보여지는 것과 다르다는 걸
감자에게 나를 들킨 저녁이다



―계간『시와소금』(201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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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감자

 

박정남

 

 

푸르죽죽한 얼굴로 앉아 계신 감자 한 알

언젠가 본 듯한 눈에 선한 모습이다

어머니! 하고 손목을 붙잡으니

주름투성이에 탈수증까지 앓으셨는지 더욱 쪼그라든다

오냐 너냐 하시며 허공으로 틔운 싹으로

내 손등만 연신 쓰다듬어주신다

그 속에서 뭐 하세요?

희뿌연 먼지 낀 창 너머로 얼어붙은 하늘 강

고무장갑도 없이 언제 얼음은 깨셨는지

첨벙첨벙 빨래하고 계신다

한숨 놓고 계신다

빨갛게 언 손가락이 공중에 떠 있다

이제 그만 나오셔야죠

포대자루 속에 들어앉은 어머니를 고이 모셔다

햇볕 좋은 베란다 화병에 앉혀드리니

비로소 예의 그 자줏빛 미소를 보이신다

겨울 한철이 푸르러지겠다

 

 


ㅡ월간『시작』 (201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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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먹는 사람들

최서림


왜정 때 배삼식 씨는 봉화에서 목도질로 먹고 살았다.
하루종일 어깨, 허리 무너져라 황장목을 나르고
물감자 한 바께스 받아들고 후들거리며 돌아왔다.
끼니라는 게 야차보다 무서웠다.

봄베이에 가면 왼종일 옷을 수천 벌 빠는
인간 세탁기 불가촉천민이 있다.
꿀꿀이죽 같은 카레를 허겁지겁 퍼 먹을 때도
허리가 펴지지 않는 청년 핫산이 있다.

야생 히아신스를 닮은 채털레이 부인이 사는
영국 중부에 지옥 같은 탄광촌 테버셜이 있다.
날카롭고 사악한 전깃불 밑에서 말을 잃어버린 광부들이
껍질도 안 깐 돼지감자로 허기를 메운다.

누에넹 들판의 시든 야생화 같은
먼지 자욱한 집 속을 고흐가 들여다보고 있다.
두엄 빛깔 옷차림의 농부들이 갈고리 같은 손으로
설익은 감자를 먹고 있다.
서먹서먹한 내면을 희미하게 가려주는 램프,
지친 얼굴들은 서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한겨울에도 난방을 못하는
질퍽거리는 우리 안 돼지보다 못한 노인
라면 하나로 하루를 때운다.
노인의 흐릿한 초점 너머로 바퀴벌레들이
말라버린 라면 찌꺼기를 뜯어먹고 있다.


ㅡ계간『시에』(201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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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송찬호 

 

 

가뭄이 길어지면서 등에 물고기를 업고 다니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물을 찾아다니는 가뭄의 신도들이다

 

노인은 침침한 눈으로 한 움큼 마른 모래 속에서

기우제에 쓸 비의 씨앗을 고른다

 

사람들이 운집하는 광장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심판의 나무에 돼지들이 매달려 교수형되었다 해진 구두도 매달려 교수형되었다 자동차들도 주렁주렁 매달려 교수형되었다

 

노인의 아들은 오래전 집을 떠났다 노인의 아들은 사냥꾼이 되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냉장고를 잡으러 다녔다

이제 노인의 아들은 피투성이로 들것에 누워, 노인의 꿈으로라도 찾아오지 않는다

 

노인은 한 번도 축제에 써보지 못한 술잔을 대지에 던졌다

대지에서 오래 땀 흘린 대가로

대지가 그에게 준

붉은 튤립 술잔을!

 

()은 벌써 다녀가셨다 마른 강줄기, 갈라진 저수지 바닥의 형상으로

아니다, 신은 문밖에 감자 한 자루 놓고 가셨다

 

 


ㅡ월간『현대문학』(201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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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감자 200그램

박상순


슬픈 감자 200그램을 옆으로 옮깁니다.
슬픈 감자 200그램을 신발장 앞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다음날엔
슬픈 감자 200그램을 거울 앞으로 옮깁니다.

슬픈 감자 200그램을 옷장에 숨깁니다.
어젯밤엔
슬픈 감자 200그램을 침대 밑에 넣어두었습니다.
오늘 밤엔
슬픈 감자 200그램을 의자 밑에 숨깁니다.

슬픈 감자 200그램은 슬픕니다.
슬픈 감자 200그램은 딱딱하게 슬픕니다.
슬픈 감자 200그램은 알알이 슬픕니다.

슬픈 감자 200그램은.



ㅡ 시집 『슬픈 감자 200그램』(난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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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감자 세 알


정진규



사무실 건물 환경원 아줌마가 옥상에 감자를 심어 길렀다고 오늘 캤다고
뜨끈뜨끈한 주먹만한 감자 세 알씩을 사무실마다 돌리며
귀한 거니 잡수어보시라고 했다
세 알을 맛있게 다 먹었다
먹는 일이 제일로 귀하다는 걸 몸으로 알았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귀하다는 말! 진종일 내가 귀했다




ㅡ시집 『공기는 내 사랑』(책만드는집,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