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4.19 시 모음 -조지훈/박두진/김수영/신동엽/고은/박봉우/신경림/허의령/민영/황명걸/이성부...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9. 4. 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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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져 오르는 함성


조지훈


 

네 벽 머리를 두드려 봐도

이것은 꽝꽝한 바윗 속이다.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이 있어도

솟구칠 수가 없구나

민주주의여!

절망하지 말아라

이대로 바위 속에 끼어 화석(化石)이 될지라도

1960년대의 포악한 정치를

네가 역사 앞에 증거 하리라.

권력의 구둣발이 네 머리를 짓밟을지라도

잔인한 총알이 네 등허리를 꿰뚫을지라도

절망하지 말아라 절망하지 말아라

민주주의여!

백성의 잎을 틀어막고 목을 조르면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신봉한다."고

외치는 자들이 여기도 있다

그것은 양의 탈을 쓴 이리

독재가 싫어서 독재와 싸운다

손뼉치다가 속은 백성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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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훈(1920-1968)은 경북 영양 태생으로, 1939년 동인지 「白紙」에 시를 발표함으로써 시작활동을 개시하였다.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집」(1936)을 간행 청록파 시인으로 불린다.  별세 후 「조지훈전집」이 간행되었으며, 이 시는 1965년 사월혁명동지회에서 발행한 『4월혁명』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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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죽음들 앞에서

박 두 진

 

누가 알리.

선혈로 강을 이뤄

한 바퀴 천천히 지를 띠두른

그 넓들 서로 알고

오늘을 울어 옌을.

 

별빛 그 눈동자들 지금은 하늘엘까?

낭랑한 그 목소리들 지금은 공중엘까?

푸른 그 애띤 넋들 지금은 햇살 속엘까?

바람 속엘까? 떨리는 풀잎

꽃이지는 꽃 나부낌 속엘까?

 

그 착한 얼굴 모습들 지금은 강물 속엘까?

거울로 어리우는 바위 속엘까?

나무 그늘엘까?

잔잔한 호수 속엘까?

그 물 속 거꾸로인 하늘 그림자엘까?

 

알아서 무엇하리.

너희들 뜨건 피와

찝긴 살은 흙거름, 거름 위에 뿌리한.

나무와 풀잎들과 꽃망울과 꽃,

 

죽음들이 잠들은 죽음 위에 서서

피와 살로 기름진 흙을 밟고 서서

우리들 여전히 히히대어 사는 것을

짐승들도 인간들도 어금니를 갈아

피 흘리며 죽어가며 흥성흥성 사는 것을

 

그럴 리.

무엇엔가 그러나 너희들은 살았으리.

너희들 뿌려 흘린

그 뜨거운 붉은 피가 유유한 강이 되고, 그래서 푸르르고

그 빛나는 눈동자들 찬란한 별이 되고, 그래서 총총하고.

그 찢기운 붉은 살은 톡톡한 흙이 되고, 그래서 기름지고.

희디 하얀 백골

뼈가 녹아 샘이 되어, 그래서 샛맑애고  

 

너희들의 숫된 맘은 푸른 바람결,

이름 석잔 바람결,

혼령들은 햇살이 되어

오늘 저 볕 살 속에 살아 있으리.

 

우리들 스스로로 알아지지 못하는

풀포기, 물굽이, 바람결과 가지 끝에

꽃이팔, 모래톱, 양지와 그늘 속에

혼령 속 마음 속에 피 흐름이 있으리.

살음 속에 영원히 잔잔하게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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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두진은 경기 태생으로, 1939년 「文章」지에 시 '낙엽송' '들국화'가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데뷔한 이래 「청록집」「수석열전」 등 많은 시집. 시론집을 낸 바 있다. 이 시는 1962년에 발간된 시집 「거미와 성좌」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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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을

김 수 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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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은 1921년 서울에서 출생하고 1968년에 별세했다. 1945년 「예술부락」지에 시 '묘정의 모래'를 발표 시단에 등단. 1950, 60년 대를 통하여 참여시의 기치를 높이 들어 문단에 일대 각성을 일깨웠다. 「김수영전집」 2권이 1982년에 간행되었으며, 1960년 6월15일에 지은 이 시는 이 전집에 수록되어 있다.




껍데기는 가라

신 동 엽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 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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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1932-1969)은 충남 부여 태생으로,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이야기하는 경기꾼의 大地'가 당선됨으로 등단. 장시 '금강', 시집 「아사녀(1963)」 등을 발표. 간행함으로서 참여 시의 차원을 민족적 역사의식에로 심화시켰다. 이 시는 1967년 간행된 「현대문학전집(신구문화사)」 「52인 시집」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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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라 영령이여 새로운 영령이여

고   은

차라리 한가닥 공포도 없던 그날의 세종로여 꽉 찬 순결이여

오래인 것의 새로움으로 다시 한번 솟아오른 북악이여

먼 바다여 섬처럼 솟아오르는 아픔의 가슴으로 깨달아라

빗발치는 총탄 앞에서 쓰러진 재 자식들이여

쓰러지며 달려간 피의 자식들이여 역사여

일찍이 그대들의 목숨 없었던들 이 역사 어이했을까보냐

4월이여 조국땅 영산홍이여 가장 아름다운 건 무엇이더냐

너와 나 빛나는 눈동자의 합작이여 엉엉 울어야 하리 살아야 하리

죽음의 자식들이여 청춘이여 어디 있느냐? 이미 넋뿐인 자식들이여

밤하늘에서 대낮의 어둠이며 땅위에선 혁명이거라

가장 아름다운 혁명이여 비로소 이 세상이 역사인 혁명이여

겨레 한 사람 온몸의 8만4천 구멍이 한꺼번에 컹컹 짖는 기쁨이여

오 민중의 수북수북 고봉밥이여 자유여 꽃죽 피죽의 민주주의여

빗발치는 총탄 앞에서 쓰러지면 쓰러뜨리는 독재의 원수여

또는 어머니 또는 순아 잘 있거라 죽어서 하늘처럼 네 곁에 있어주마

죽어서 이 매탄의 질곡 부수고 나가면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이여

오 우리나라여 겨레여 해방의 아우성이여 새 세상이여

4월이여 거리 거리에 틀림없이 쏟아져 나오는 승리의 민중이여 케터필러여

내동댕이쳐진 이승만 동상이여 그러나 사랑하지 않으면 살수 없는 혁명이여

너도 나도 얼싸안고 만조의 물 가득히 맞아들이는 항구여 혁명이여

밤이여 악인 끈질기듯이 밤새도록 정의도 잠들지 않았구나

마산부두의 김주열 송장이여 그 송장에 박힌 총탄으로서의 소년이여

4월18일 안암골이여 이윽고 4월 19일 세종로여

서울이여 불타는 파출소 불더미 신문사 잿더미 무슨 회관을 보아라.

자욱한 화약냄새 듀퐁 최루탄의 눈물 그러나 정든 산천초목의 봄이여

혁명이여 너 무엇이더냐 상전아래 종놈 종년 아니거든 무엇이더냐

혁명이여 너로 하여금 역사 있거라 역사의 청춘 있거라

2백 영령이여 6천의 부상자여 동지들이여 자유의 자식들이여

역사여 뜨거운 가슴 이룽이룽 타오르는 전 세계의 그날이여

새로운 만인의 날이여 역사 위해서라면 4월이여 그날 너 돌아오라

날마다 20년마다 그날로 돌아오라 쌓인 원한 어쩌란 말이냐

오 청춘의 혁명이여 혁명의 청춘 역사의 청춘이여

5천년의 황톳땅 쓰라린 비바람에도 숫처녀인 청춘이거라

차라리 휘날리는 네 치맛자락 피 묻은 깃발로 펄럭이거라

4월이여 너 아니었다면 여기에 무슨 진리 무슨 꽃이 피겠느냐

꽃이여 총칼 없이도 무지막지 돈 없이도 오 빈 주먹 혁명의 문화여

4월이여 4월의 싸움과 죽음이여 승리여 허공 속의 크나큰 고통이여

오늘이거라 돌아오라 20년 전의 청춘 오늘이거라 돌아오라

싸워서 원수와 하나로 죽어간 형제들이여 잚은 짐승이여 풀들이여

 

그대들이 꼭 쥐고 죽었던 그 굳은 손안에 든 힘 이제 어디 있느냐

두 눈 부릅뜨고 소리지르며 달려가던 그 번개 칼의 힘 어디 있느냐

이 세상 제일의 일 위해 역사의 힘이여 민중의 힘이여 돌아오라

4월이여 하늘을 상대로 대지를 상대로 싸우는 병사여 노래의 자식들이여

4월이여 역사의 날  피로 노래하는 예술이여 붉은 노을의 애미애비여

오 모든 진리는 끝내 피의 진리 피로서 펼펄 살아서 뛰노는 진리거라

4월이여 오 4월의 꿈이여 그 낮의 대낮인 진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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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 은 전북 군산 태생으로, 1951년 입산하여 12년간 승려생활을 하다가 1958년 「현대문학」에 시 '눈길' 등을 발표함으로서 등단. 「새벽길」(창작과비평사, 1978) 등 시집 여러편과 비평집 등이 있다. 이 시는 1980년 4월8일 「고대신문」에 419 스무 돌 기념시로 발표




진달래도 피면 무엇하리

박 봉 우

4월의 피바람도 지나간

수난의 도심은

아무렇지도 않는

표정을 짓고 있구나

 

진달래도 피면 무엇하리

 

갈라진 가슴팍엔

살고 싶은 무기도 빼앗겨 버렸구나.

 

아아 저녁이 되면

자살을 못하기 때문에

술집이 가득 넘치는 도심.

 

약보다도

이 고달픈 이야기들을 들으라

멍들어 가는 얼굴들을 보라.

 

어린 4월 피바람에

모두들 위대한

훈장을 달구

혁명을 모독하는구나.

 

이제 진달래도 피면 무엇하리.

 

가야 할 곳은

여기도,

저기도, 병실,

 

모든 자살의 집단, 병든

기를 올려라

나의 병든 데모는 이렇게도

슬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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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우는 광주 태생으로 1956년 시 '휴전선'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됨으로써 등단. 이 시는 1961년 3월9일 자 조선일보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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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시골에 와서

신 경 림

밤새워 문짝이 덜컹대고

골목을 축축한 바람이 쓸고 있다.

헐린 담장에 어수선한 두엄더미 위에」

살구꽃이 피고 어지럽게

피어서 꺽이고 밟히고

그래도 다시 피는 4월.

 

나는 남한강 상류 외진 읍내에 와서

통금이 없는 빈 거리를 헤매이며

어느새 잊어버린

그날의 함성을 생각했다.

티끌처럼 쏠리며 살아온 나날

들처럼 뒹굴며 이어온 세월,

 

다시 그날의 종소리가 들리리라고

아무도 믿지 않는 밤은 어두웠다.

친구를 생각했다. 찬 돌에 이마를 대고

깊은 잠이 들었을 친구를

그 손톱에 배었을  핏자국을

 

4월이라도 바람은 그냥 차고

살구꽃이 피어도 흐느낌은 더 높은데

축축한 바람은 꽃가지에 와 매달려

친구들의 울음처럼 잉잉댔다.

진달래도 피고 개나리도 피고

꺽이고 밟히고 다시 피는 4월

밤은 좀체 밝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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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림은 충주태생으로, 1956년 문학예술지에 새 '갈대' 등으로 이한직의 추천을 받아 등단. 이 시는 「주간시민」(1977)에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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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알아진 베고니아 꽃

허 의 령

그러니까......

내가

그날

그 무렵

어쩌다 서울 장안에 있었고

물샐 틈 없이 겨눈 어깨가

하늘을 밀고 가던 날에

말이다.

 

포연에 서린 자욱

짓궂게도 아물지 않아

엘레지에 파묻힐 때

아니

태풍을 맞서고 나선 등불마냥

내 숨결이 낮아질 때

장안이 들끓어

하늘이 내려앉고

그래서는 안 될 얼굴끼리

불장난이 있을 때

말이다.

 

그날 밤

병원문이 터져 나가고

십대의 꽃송이들이

가닥가닥 찢긴 채

아직은 꺼져 가는 체온을 걷어 가며

곁에와 나란히

자리를 마련하던 날에

말이다.

 

누가 놓았는지 모르지만

병실의 꽃

그것이 베꼬니아라 하기에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고

손을 내밀어

씨종자 가리듯

유심히 보고 또 보고

했으니 ......

그 꽃이 사철 피는

 

베꼬니아라 하기에.

 

선혈같이 붉은 빛 간직타 못해

그냥 쏟아버리고

도려 핏빛을 아신 듯한

그 꽃이 말이다.

 

아기의 입술마냥

금붕어가 내품는 물거품마냥

피었다가 제 발 밑에 소롯이 고여가는

귀엽기만한 그 꽃이

말이다.

 

화분에 담긴 그 꽃이

베꼬니아라 하기에

마음 가다듬어 보고파지며

어느 새 눈시울이 뜨거웠음은

4월에 알아진 때문이라.

 

그러니까.......

내가

그날

그 무렵

어쩌다 서울 장안에 있었고

물샐 틈 없이 겨눈 어깨가

하늘을 밀고 가던 날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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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의령은 전남 순천 태생으로, 1961년 사상계 제2의 신인 문학상을 수상으로서 등단했다. 이 시는 그 때의 당선작이다.



귀뚜라미 울음

 

 

민   영

 

저 이름 없는

풀포기 아래

돌멩이 밑에

잠 못 이루며

흐느끼는

귀뚜라미의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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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영은 강원도 철원 태생으로, 1959년 현대문학지에 시 '동안' 등이 추천됨으로서 등단. 이 시는 21인 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뷸로」(1982)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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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교정

 

황 명 걸

모두들 어디가고

빈 교정에

개나리만 만발했나

 

봄볕 가득한

빈 잔디

빈 벤치

 

먼지 앉은 교실의

책상 걸상들이

임자를 보고 싶다네

 

어디 갔을까

무엇 하고 있을까

친구들은 지금

 

집에 있어도 편잖고

산에 다고 언짢아

생각느니 친구들뿐

 

사랑을 갓 배울 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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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명걸은 평양 태생으로, 1962년 자유문학지에 시 '이 봄의 미아'가 추천됨으로서 등단. 이 시는 월간중앙 1975년 6월 호에 발표되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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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님

 

이 성 부

어느 날 밤

내 깊은 잠의 한 가운데에

뛰어들어

아직도 깨끗한 손길로

나를 흔드는 손님이 있었다.

 

아직도 얼굴이 하얀,

불타는 눈의,

청년이 거기 있었다.

 

눈 비비며

내 그를 보았으나

눈부셔 눈을 감았다.

우리들의 땅을 우리들의 피로

적셨을 때,

우리들의 죽음이 죽음으로

 

다시 태어났을 때,

사랑을 찾았을 때,

 

검정 작업복을 입었던 내 친구

밤 깊도록 머리 맞대었던 내 친구

아직도 작업복을 입고,

한 손에 책을 들고,

말없이 내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아아 부끄러운 내 어깨 위에

더러운 내 14년의 어깨 위에

그 깨끗한 손길로 손을 얹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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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백제행」(1977년 발행한 이성부의 시집)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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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들 어쩌란 말이냐

國土.12

조 태 일

오늘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4.19정신! 어쩌고 저쩌고 하면

실감도 안 나고 괜히 부끄러워만 진다.

 

그날 우거진 총검의 숲을 맨 가슴으로 헤치며

독재의 울타리를 향해 파도치다가

한 방의 총알에 쓰러져

오늘 다시 살아난다 해도 부끄러울 것인가

 

그날 총 알이 나를 피해 달아나서

그날 숨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 총 알이 한없이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맺힌 한은 아직 남아 있어서

들끓는 눈물을 하늘에 뿌리며

비틀비틀 수유리를 찾아간다.

하, 허연 비석들이 살아나면 무얼하나

하, 들꽃들이 피어나면 무얼하나

하, 참새들이 울어싸면 무얼하나 하, 혁명을 생각하면 무얼하나

 

4.19 묘지 앞에 비석으로 꼿꼿이 서서

뼈를 갈아 섞은 듯 독한 소주에 나를 묻으면

하늘도 언짢아서 궂어진다.

궂은대로 번개도 치고 천둥도 울면야

그날의 함성을 몸에 두리두리 두르고

피뢰침일랑 머리에 꽂고 가슴에 꽂고

죽음 가까운 데까지 가서

묶여진 육신 펄럭이며 아가릴 벌려

풍선처럼 아우성 아우성을 친다면 덜이나 억울하겠는데 ......

 

하, 하늘은 저리 궂기만 하고

천년이고 만년이고 바다는 파도 하나 못 일으킬 징조냐

더운 가슴들은 식어만 가기냐

살아남아서 괜히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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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태일은 196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고, 이 시는 대학신문(1972년)에 발표되었다



1976년 4월 20일

 

최 하 림

검은 도시도 멀리 사라지고

기념비들만 수척하게 서 있는 공원에서

나은 어둠을 닦으며 비문을 읽는다.

진달래꽃이 산언덕에서 고운 패혈처럼

피를 토하고 접동새들이 울고 숱 많은 모발을

하늘로 날리며 돌밭 길로 묘비 새로 서성거리던

형제들의 그림자도 없는 어둠 속에서

나는 그날의 함성을 환청으로 들으며

비문을 읽는다. 피의 거리의, 피의 거리의

어둠에 떠는 어둠의 소리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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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림은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됨으로 등단하였고 1976년 「우리들을 위하여」 등의 시집을 낸 바 있으며, 이 시는 「우리들을 위하여」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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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다시 살아

 

유 안 진

 

지금쯤은 장년고개 올라섰을 우리 오빠는

꽃처럼 깃발처럼 나부끼다 졌답니다.

그 이마의 푸르른 빛 불길 같던 눈빛은

4월 새닢으로 눈부신 꽃빛깔로

사랑하던 이 산하 언덕에도 쑥굴헝에도

해마다 꽃으로 다시 살아오십니다.

메아리 메아리로 돌아치던 그 목청도

생생한 바람소리 물소리로 살아오십니다.

꽃진 자리에 열매는 열려야 했지만

부끄럽게도 아직은 비어있다 하여

해마다 4월이 오면 꽃으로 오십니다.

는 감고 머리 숙여 추도하는 오늘도

웃음인가요  웃음인가요. 저 꽃의 모습

결고운 바람에도 우리 가슴 울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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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안진은 1965년 현대문학지에 새 '달 위로'가 추천됨으로써 등단하였으며, 이 시는 「대학신문」 1983년 4월 4.19기념시로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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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회상

양 성 우

들어보아라. 지금도 광화문 그 부근에 가서

한나절 귀기울여 들어  보아라.

시린 목덜미를 움추려가며, 다친 팔다리를

어루만지며, 여기저기 숨죽이며 들어보아라.

온 몸에 시뻘건 피투성이로

길바닥에 나뒹굴며 발을 구르며

죽어간 영혼들의 신음소리가 구천에 가득 차서

번쩍이면서 성난 물결로 밀려오지 않느냐.

 

바람이어라. 진흙 위에 뜨겁게 일어나는

바람이어라. 끈끈한 설움 짓씹어가며

우수수  우수수 몰아쳐 설움 짓씹어가며

서울의 칼 날 뿐인 하늘아래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4월 그 아침,

남은 목숨으로 치달으면서

목이 터지도록 외치며 가던 햇살이어라.

총창 끝에 쓰러지며 난자 당하며

우수수 우수수 몰아쳐 오는 바람이어라.

진흙 위에 뜨겁게 일어나는 바람이어라.

 

사랑에서 피비린내만 나더라

어디서나 총 든 놈만 즐거워하고,

날마다 사람들은 밤이 되어서

억울하게 부자들의 밥이 되어서

안개처럼 흐르다가 사라져 가고

사방에서 증오만 자라고

사방에서 피비린내만 나더라.

 

대낮에 흘린 피가 날아올라서

칙칙한 밤하늘의 큰 별이 되고,

대낮에 흘린 피가 스며들어서

먼지뿐인 이 땅의 큰 꽃이 되어

이글이글 타오르며 손 짓 하면서

찢어진 가슴팍을 긁어대면서

한밤에도 악몽 속에 소리치며 온다.

 

들어보아라. 빼앗긴 사람들아,

한 세월 땅속에 눈물로 고여서

적막강산 바라보며 눈물로 고여서

 

지금도 광화문 그 부근에 살며

밤새워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

4월 영혼들의 신음소리를

한나절 귀기울여 들어보아라.

물 묻은 휴지처럼 군화 끝에 채이며

얼음 위에 떠도는 빼앗긴 사람들아.

들어보아라.

온몸에 시뻘건 피투성이로

소리치며  소리치며 오지 않느냐.

지금도 광화문 그 부근에

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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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성우는 「시인지」를 통하여 등단, 시집 「신하여 신하여」(1974, 「겨울공화국」(1977」 이 등이 있으며, 이 시는 「겨울공화국」에 수록되어 있다




4월이여, 우리는 무엇인가

신 대 철

1

강물이 서서 가지를 친다.

폭풍을 휘몰아 낸 가지 끝엔

하얗게 피어나는 새들,

그의 몸 전체가 손으로 뻗어 나간다.

 

사방이 닫힌 골목을 지나 칼날 총구멍 속을 지나

가지에 피 맺힌 둥지 하나 열리고 있다.

 

(땅은 길에 버려 있다. 길바닥에는 이끼 낀 돌 부스러기 몇 개, 우물 속에는 깨진 지붕이 가라앉아 있다. 스물 서넛에 처음으로 동네의 지붕에 올라 동네의 끝을 본 자는 죽고 죽어서 4월 하루를 남기고 그 아이들은 자라서 휘어지며 논 밭 없는 평야를 괴고 있는가?)

 

2

4월이여

새도 둥지도 허공에 묻히고

오늘은 네 앞에

누가 설 수 있는가?

누가 네 이름을 부를 수 있는가?

네 피로 걷고 시를 쓰고

네 피로 숨쉬고 일하고 있지만

4월이여

우리는 너의 무엇인가?

 

온갖 거리에 개나리 같은 진나리

진달래 같은 개달래 우글우글 피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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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대철은 196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강설의 아침에서 해빙의 아침까지'가 당선됨으로써 등단, 시집으로는 「무인도를 위하여」(1977) 있으며, 이 시는 1983년 4월18일 「연세춘추」에 4월혁명 23주년 기념 시로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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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김 준 태

우리들은 당신을 할아버지라 불렀다.

어린 시절에 우리들은 당신을 대통령할아버지라 큰소리로 외웠다.

천장에서 새어내린 빗물이 지렁이처럼 얼룩져 있는,

시골 공회당 흙벽에 붙은 대문짝만한 당신의 얼굴 밑에서

우리들은 소꿉장난을 즐기며 진흙투성이로 뒹굴었다.

땅바닥엔 손가락이나 유리조각으로 낙서하길 좋아했지만

당신의 얼굴에 그 흔한 찌푸라기 하나 스치지 않으면서

 

그러다 싫증나면 풀여치의 뒷다리도 뚝 끊어버렸다.

반딧불을 집어넣은 호박꽃을 머리에 가득 이고

송사리 떼뿐인 실 강의 징검다리를 건너뛰었다.

문수가 맞은 검정 고무신과 '아메다마'를 사오마던

아버지를 마중 나갔다 읍내 시장에서 돌아오는 아버지를

들녘 도처에 땅거미가 끼일 때까지 기다렸다.

시내가 디딤돌 밑 모래흙처럼 살믓 거기서 노상 서걱이던 그 시절---

그러나 아버지는 피묻은 몽당빗자루가 귀신이 되는 그런 밤중에

도깨비불에 흘려 절뚝절뚝 올아오기가 일쑤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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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는 1969년 「시인지」를 통해 문단에 등단, 시집으로는 참깨를 틀면서」(1977)가 있으며, 이 시는 그 시잡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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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증언하는 자들이여 4.19의 힘을 보아라.

 

윤 상 규

 

거리에 붙은 4월의 혼을 보라.

내가 그날 보았던

짓붉은 피의 뜨거운 여울

두 주먹에 정의를 불끈 죈

거대한 항거를 보라.

헛되이 만용을 부리지 않고

그들은 역사와 힘으로 싸웠다.

핍박을 향하여 내던진

장엄한 희생을 보라.

그 쾌적한 울분이여

핍박을 향하여 온 몸을 바친

아, 우리들의 큰 희생이여,

4월 하늘을 갈라낸

그들의 함성을 들어보라.

뜨거운 피의 여울을,

역사를 증언하는 자들이여

그 힘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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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규는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빙하의 새'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이 시는 「연세춘추」 1967년 4월17일 자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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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던진 돌

 

강 은 교

너 아직 거기 있느냐

4월에 던진 돌아.

꽃샘바람 몹시도 불어가는

길모퉁이

 

연탄재며 밥 찌꺼기

혹은 목 떨어진 개나리 꽃 새

꾸부정하게 끼어 앉아

깨진 머리로 빛 나는

돌아

으스름 무렵이면 무렵마다

한 입 가득 피 베어 문 하늘이

네 얼굴처럼 달려온다.

 

날이라도 궂어

출출출 비 내리 쏟는 날에는

험집 투성이 우리 가슴 결엔

화들짝 살아오는 숨소리, 고함소리

난장판으로 강물이 흐르고

뒷산 허리에서

우르르 우르르

우회 몸서리 요란했다.

 

아직 거기 있느냐 너

4월에 던진 돌아,

개나리 활활 일어설 때를 기다려

아, 그 꽃잎 꽃잎에 상채기 흠씬

물댈 때를 기다려

일년이고 십 년이고

수유리 한 구석을

차마 못 떠나는 돌아

네가 못 떠나는 이 땅에

올해도 4월은 가지만

우리는 영영 그 4월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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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은교는 1968년 시 '순례자의 잠'이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시단에 나왔다. 「풀잎」(1975), 「소리집」(1982) 등의 시집이 있으며, 이 시는 「연세춘추」 1981년 4월17일자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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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정 희 성

 

 

보이지 않는 것은 죽음만이 아니다.

굳이 돌에 새긴 피

그 시절의 무덤을 홀로

지키고 있는 것은 석탑(石塔) 뿐

이 땅의 정처 없는 넋이

다만 풀 가운데 누워

풀로서 자라게 한다.

봄이 와도 우리가 이룬 것은 없고

죽은 자가 또다시 무엇을 이루겠느냐

봄이 오면 속절없이 찾는 자 하나를

젖은 눈물에 다시 젖게 하려느냐

4월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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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성은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변신'이 당선됨으로써 등단, 시집으로는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가 있다. 이 시는 「한국문학」(1974)에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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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4월

 

이 시 영

감자 대를 뜯다가가도 나는 너를 기다렸다

오늘도 동냥 나가 나는 너를 기다렸다.

강 건너 버들잎 날리면

보리밭 둑을 타고 너는 오리라

땀에 젖은 얼굴 빛나는 함성

그날의 총탄 속을 뚫고

너는 다시 오리라

거친 땅이 낳은 아들 문둥이 아들

누더기 속에 간 오히려 깨끗한 사랑

두 팔에 덥석 안을 날은 오리라

아아 몇몇 해던가

먹구름을 몰아내면 또 같은 먹구름

소나기를 피하면 더 거센 소나기

너는 오지 않고 쉽사리 오지 않고

종살이에 지친 누이들

칡꽃이 희게 울 때 또 다른 주인 찾아 몸 팔러 갔네

종달이 빈 밭에 날 때

힘깨나 쓰는 동생들 서울 가 떠돌이가 되었네

애비 같은 비렁뱅이 되었네

아아 몇몇 해던가 기다림의 나날

한번은 박차고 나아가 맞이해야 할 날

가난하지만 자랑스럽게 우리가 우리 차지해야 할 날

크나큰 슬픔의 날 기쁨의 날 별빛 해방의 날 오리라

바로 너는 오리라 꽃수레 타고

가랑잎만 굴러도 나는 너를 기다렸다.

다리 밑 움막 열고 나와 나는 너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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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영은 1969년 중앙일보를 통해 시단에 데뷔했다. 시집으로는 「만월」(1977)이 있으며,. 이 시는 「영대신문」1977년 5월 11일자에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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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리의 침묵

 

김 창 완

꽃샘바람 부리라 미리 알았다 해도 피고야 말

진달래 무더기로 저 길 위에 나뒹군다.

짓밟혀도 아프단 말 못하는 꽃잎 짓밟고

손등으로 눈 비비며 황사(黃砂) 속 더듬어 수유리 찾아가니

꽃샘바람은 좁은 내 어깨 다시 움츠리게 하고

말라붙은 입술도 트게 한다. 그러나 침묵해야지.

저물녘 두꺼워지는 산그늘 속으로 들어가는 나에게

내 키보다 훨씬 큰 그림자 앞세우고 돌아오는 나에게

그러니 침묵해야지 아직은 침묵해야지 일러주는 이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이냐는 물음에서조차 입다문다.

돌에 새긴 그대들의 주먹만큼 내 주먹은 단단하지 못하고

돌에 새긴 그대들의 가슴만큼 내 가슴은 뜨겁지 못해

쓰다듬어 보아도 아무 것도 만져지지 않는 내 손바닥엔

감옥에서 보내온 아우의 편지가 구겨져 있을 뿐

형님, 형님이란 말이 돌멩이처럼 날아와 나를 때린다.

작은 돌멩이들아 너희가 왜

날아가 새 되지 못하고 떨어져 뒹굴며

이 외면 당한 변두릿길에서 짓밟히고 있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러나 아직은 침묵해야지

돌멩이들조차 그렇게 일러주는 수유리

짙어지는 어두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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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완은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시 '개화(開花)'가 당선됨으로 시단에 등단하였다. 시집으로는 「인동(忍冬)일기」(1979)가 있으며,. 이 시는 그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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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 광 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를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우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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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규는 1975년 「문학과지성」지를 통해 시단에 등단하였다. 시집으로는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1979)이 있으며. 이 시는 그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4월

 

이 종 욱

바람 불면

플래카드 펄럭인다.

사그라진 함성

되살아난다.

진달래 피면

얼어붙었던 형님의 피

다시 녹는다

형님의 피

진달래가 들이마셨다.

진달래꽃잎이 되었다.

봄이 오면 우리

진달래꽃잎 따먹으며

형님의 착하고 굳센 동생이 된다.

 

스탈린은 죽고

또 죽고

만델스탐의 시는 살아있다.

프랑코도 죽고

또 죽고

가르샤로르까의 시는 살아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수없이 살해되는

검고 질긴 얼굴 벗겨내기 위해

우리는 또 한번 죽는다.

 

모든 총은

피묻은 총알도

고철로 돌아간다.

칼은 잘해야 박물관에 진열된다.

플래카드는 함성은 피는

아무데도 진열되지 않는다.

바람 불어오는 곳에서

함께 불어온다.

진달래 피는 곳에서

함께 핀다.

 

살인자도 어느 누구도

귀가하면 아버지

그들의 피는 밤마다

 

검붉은 장미꽃잎을 피운다.

주검의 재는

바람이 허허벌판으로 가져간다.

무덤 속에 진달래꽃 피우는 때

살아 있는 뼈

4월의 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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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욱은 1975년 「창작과비평」 1975년 겨울호를 통해 시단에 데뷔했다. 「반시(反詩)」 동인으로 시집 「꽃샘추위」가 있으며. 이 시는 「씨잎의 소리」(1977)에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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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러나

김 창 범

우리는 그러나

시청 황금빛 문 앞을 지나오면서

플라스틱 장미꽃을 시민에게 바치는

지하도를 지나

오면서 광화문 비각 바로 밑을 돌아

오면서

 

술주정을 하면서

술주정이 되지 않는다고 또 마시고 나와

이번에는 정말로 술주정이 되라고 울어

가면서

 

죽이면서 노랗게 아주 노오랗게 죽이면서

자유가 안되면 참새가 되라고, 참새 꽁지라도

되라고, 아시아식으로 아프리카식으로

욕정을 죽이면서, 하하하 반항을 죽이면서

 

인쇄소에서 골목에서 버스 뒷자리에서

하숙방에서 우리가 지껄이는 말

우리가 숨쉬는 말, 친구여 근질거리는 말

미치는 말 곪아터지는 말 싱싱한 말을

모조리 쓰레기통 속에 뱉아 버리면서

 

질겅질겅 껌을 씹듯이 신문에 코를 풀면서

신나는 쑈, 온통 미치라고 흔들어주는

엉덩이를 보면서

음탕하게  음탕하게 스페인내란을 격찬하면서

시민회관 구석에서 킥킥거리면서

인기 코메디언이 뿌리는

국산 만병통치약 따위나 깨물어 보면서

 

우리는 그러나 남 몰래 앓아 가면서

꿍꿍 앓는 것이 아니라 썰렁한 하숙방

뒤에서 매일 매일

술을 퍼 마시듯이 간장경화증과 싸우면서

아시아식으로 아프리카식으로 투쟁하면서

 

밤 열두 시만 되면 화해를 하고

동침하면서

 

다시 오전부터 더는 속지 않겠다고

열열히 다투면서

열열히 잊지 못해 증오하면서

 

친구여

개나리꽃은 빨갛고 하얗던가, 파랗고

하얗던가

가지마다 무수하게 달려있는

네가 말하는 소수파, 오 무서운 폭탄들이

어떻게 만발해 있는지

똑똑히 들여다 보면서, 개나리꽃이 왜

아름다운 꽃이 될 수 있는지 들여다 보면서

 

우리는 그러나 밤 낮 달려 가면서

긴 외투를 걸치고 해방촌 비탈진 길을

올라 가면서

자유가 되든지 자유의 함정이 되든지

봄만 되면

틀림없이 만발하는 반역으로 달려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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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범은 1972년 「창작과비평」지에 '산' 외 7편의 시를 발표함으로 시단에 등단했다. 시집으로 「봄의 소리」(1981)가 있으며. '4.19 이후'란 부제가 붙어있는 이 시는 「동대신문」(1973)에 발표되었다.




돌아온 그날

이 동 순

숨죽여 남몰래 흐느끼며

꿈에서도 가위눌리던 쓰린 밤마다

내밀던 풀 싹들 아예 밑둥조차 잘려지더니

다시 되찾은 그날의

꽃피고 새도 우는 벅찬 아침

고운 병풍 돌려놓고 공중의 혼들 모셔와서

한잔 막걸리나마 받들어 올리오니

아픈 뼈 아직도 총알자국 쑤셔오는

다시금 돌아온 그날이여

끝끝내 오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선 자리에 한번쯤 두 손 모으고 눈감으면

한껏 부푼 꽃방울들 온 천지에 터져 오는데

눈에 왈칵 더운 것은 몰려오고

정녕 우리들의 하늘은 우리 것인가

또 한번 남을 줘선 안될 그날

메마른 응달구석에서 씨뿌려 다독거리며

문득 하늘보고 와하하 소리치는 날

오래 못 본 사람들 파리한 얼굴로 돌아오고

그를 보러 온갖 신발 한데 얼려 붐비는 방 앞에서

손잡고 말없이 눈웃음 주고받는 날

어떤 겨울 땅에서도 얼어붙지 않았다는

흰 뿌리의 야무진 깊이를 보여준 그 날

한껏 되찾아야 할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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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순은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마왕의 잠'이 당선됨으로 시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개밥풀」(1980)이 있으며 이 시는 1980년 4월19일 "4월혁명 수무돌"에 씌어진 미발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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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에서 오월로

 

하 종 오

봄의 번성을 위해 싹틔운 너는

나에게 개화하는 일을 물려주었다.

아는 사람은 안다.

이 세상 떠도는 마음들이

한 마리 나비 되어 앉을 곳 찾는데

인적만 남은 텅 빈 한길에서 내가

왜 부르르  부르르 낙화하여 몸 떨었는가

남도에서 꽃샘바람에 흔들리던 잎새에

보이지 않는 신음소리가 날 때마다

피같이 새붉은 꽃송이가 벙글어

우리는 인간의 크고 곧은 목소리를 들었다.

갖가지 꽃들 함께 꽃가루 나눠 살려고

향기 내어 나비 떼 부르기도 했지만

너와 나는 씨앗을 맺지 못했다.

이 봄을 아는 사람은 이 암유도 안다.

여름의 눈부신 녹음을 위해

우리는 못다 핀 꽃술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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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종오는 197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1982)가 있다. 이 시는 미발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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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를 맞이하여

 

윤 재 걸

선죽교 포은의

그 핏방울 자욱은

아직도 역력하다고 듣고 있지.

오염된 4월의 천장을 찝고

녹 슨 포도(鋪道)를 윤낸

우리의 맑은 함성이

아직 살아있는 증거일 수 있다면

---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아픈 묘지의 비명(碑銘)에서

언어의 푸른 동화작용은

짙게 피어오르고

제재소의 톱질소린

우렁차게 울려 오는데 -----

 

선죽교, 피의 조류들은

아직 그 맑은 비상을

잊고 있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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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재걸은 1975년 「월간문학」신인상을 수상함으로 시단에 데뷔했다. 시집으로 「후여 후여 목청갈아」(1979)가 있으며. 이 시는 「연세춘추」 1968년 4월15일 자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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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4월은 가고

 

이 태 수

다시 4월을 가고

한 쌍의 금화조(錦華鳥), 조롱 속에서

날개를 파닥이는 낯 한 때

창가에 매달려 파닥이다가

울었어요. 어깨로만,

황사(黃砂) 몰려오고

바람에 묻어 어른대는 얼굴, 얼굴들.

빈 의지 모서리엔 그때의 그 뜨거운

꽃봉오리들이

남아 술렁이었어요.

또 풀꽃들은 시들고

속절없이 창유리에 눈 박으며

금이 간 꿈 몇 조각, 떠돌다 지워지고

스러졌단 뿌옇게 글썽이는

피의 귀한 빛깔들을

붙들어 안았어요. 내 눈은 어두우나

눈부시던 날의 그 성난 목소리

더듬어 귀를 대면서

다시 날개를 꿈꾸고

먹구름 사이 떠 흐르는 눈빛들.

어깨 세우고 바로 걷던 자들의

오오 불붙은 가슴들,

그 완강한 숨소리 가까이 에

조심조심 다가서면서

4월의 꿈, 그 황홀한 가장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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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수는 1974년 「현대문학」을 통해 데뷔했다. 시집으로 「그림자의 그늘」(1979)이 있으며, 이 시는 「심상」지(1979)에 발표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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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리의 바람

 

고 정 희

자느냐  자느냐  자느냐

떠다니는 혼들은 다 날아와

대학시절 수유리 숲정이 흔들 때

징그러운 바람소리 수유리에 매달려

자느냐  자느냐  자느냐

고기바늘처럼 빛나는 야심을 흔들 때

조금씩 깊은 잠들 귀 막고 돌아누워

불덩이 하나에 따뜻한 젊음,

불끈 쥔 두 주먹에 음악도 뽑히고

자느냐  자느냐  자느냐

유리창 부셔지고 램프 불 꺼지고

자느냐  자느냐  자느냐

간밤 굳게 잡은 단꿈도 엎어지고

숲이라 숲은 함께 울부짖으며

세차게  세차게 서로 목 부빌 때

 

자느냐  자느냐  자느냐

한 밑천이 흔들이고 두 기둥이 흔들리고

수멀수멀  수멀수멀 네 벽이 흔들리고

수유리가 흔들리고 도봉구가 흔들리고

인수봉이 흔들리고 서울이 흔들리고

흔들리고  흔들리고

한반도가 흔들릴 때

흔들리고  흔들리고

땅덩이가 흔들릴 때

 

갈가리 찢기는 우리 실존 그러안고

뉘 모를 곳으로 떠나간 사람들

쨍그렁 쨍그렁 요령이 되어

새벽 이슬 마시며 떠나간 사람들

한밤에 가만히 다녀갔구나

가뭄 들린 대학 숲에 흥건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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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희는 「현대시학」지에 시 '부활 그 이후' '연가'가 추천됨으로 시단에 등단. 시집으로 「신락원」(1981)이 있으며, 이 시는 그 시집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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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리에서의 잠

 

박 몽 구

간곡하게 말리는 손들을 뿌리치고

고향을 떠날 때부터

다시 가슴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이 곳 서울에 와서

동전 한푼, 손 하나 빌려주지 않는

암울한 거리에 와서

할딱거리는 가슴으로

때로 팍팍한 길을 헤매던 끝에

절름거리는 다리를 끌며 어디론가 가야 할 때

고향의 아버님께 소액환이라도 부쳐야 할 때

아픈 몸이 곪아터진 세상을 이겨야 할 때

나는 이곳 한산한 수유리로 왔다,

뜨신 구들목에 상처를 눕혔다.

마지막 사랑의 열기가 타는

수유리 윤정이 누나네 집으로 왔다.

자꾸만 나를 몰아내는 종로 쪽으로

아픈 온몸을 들어 밀고 가기 위하여

밤늦은 가발 공장에서

바늘 끝처럼 온 몸을 파고드는 머리카락을 마시며

잠을 빼앗기며

시드는 누이들의 불평을 밀고 가기 위하여

천 길 어둠이 고인 곳을

누군가 일어서서 거부하다가

감옥으로 떠나는 것을 거부하기 위하여

딛을 땅 다 빼앗긴 채

끈적거리는 피로를 데리고 수유리로 왔다.

그 때 내가 밀고 나간 것은

절름거리는 다리 더 이상 탕감되지 않는 피로

저 절망의 끝에 빛나는 땅

밀고 나가 밀고 나가

어둠의 땅이 더 이상 남지 않을

빛나는 땅

어디론가 다시 아픔을 찾아 떠나기 위하여

수유리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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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몽구는 「월간 대화」(1977년 7월)를 통해 시단에 등단. 시집으로 「우리가 우리에게 묻는다」(1982)가  있으며, 이 시는 「창작과 비평」(1978)에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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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울 수 없는 노래

4.19 21주년 기념시

 

 

김 정 환

불현듯, 미친 듯이

솟아나는 이름들은 있다.

빗속에서 포장도로 위에서

온 몸이 젖은 채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던 시절

모든 것은 사랑이라고 했다.

모든 것은 죽음이라고 했다.

모든 것은 부활이라고 했다.

불러도 외쳐 불러도

그것은 떠오르지 않는 이미 옛날

그러나 불현듯,  어느 날 갑자기

미친 듯이 내 가슴에 불을 지르는

그리움은 있다. 빗속에서도 활활 솟구쳐 오르는'

가슴에 치미는 이름들은 있다.

그들은 함성이 되어 불탄다

사라져버린

그들의 노래는 아직도 있다.

그들의 뜨거움은 아직도 있다.

그대 눈물 빛에, 뜨거움 치미는 목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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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환은 「창작과 비평」(1980년 여름호)를 통해 시단에 등단. 시집으로 「지울 수 없는 노래」(1982)가  있으며, 이 시는 「대학신문」(1981)에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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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賣春)

 

 

홍 일 선

갔구나 아무리 외쳐 불러도

너는 어디에도 없구나 없어

갔어 사월 하늘의 빈 그림자만 남기고

네가 떠나간 밤, 네가 목놓아 울던 밤

열 닷새 만월에 어리우는 꿈이란 꿈은 다아 잊고

 

그리웁던 네 목소리

메아리 되어 홀로 밤을 밝히는 목소리

외로움의 네 하이얀 얼굴을 뉘 잊으랴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향하여

이 밤 우린 거짓이 되어 찬송가만을 부르는구나

 

보라 탄식의 깊고 깊은 황토 저편

네 애비 지게처럼 스러져 누워 있는 소리들

지금도 아득한 땅을 헤매고 있을 네 목소리

헤매리라 서로 말없는 새벽 별이 되어

먼데서 이름 부르는 넋이 되어 헤매리라

 

봄이 와도 진달래 산천에 봄이 온다 해도

언 땅에 말라붙은 꽃씨가 떨리는구나

네가 떠나간 밤 네가 목놓아 울던 밤

봄이여 네 슬픔 네 목소리 뉘 잊으랴만

들리는구나 다시 들려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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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일선은 「창작과 비평」(1980년 여름호)를 통해 시단에 등단., 이 시는 「창작과 비평」지)에 발표되었던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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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에게

 

 

정 규 화

 

 

날마다 와도 아쉬운 판에

일년에 한번씩 오다니

차비가 없어 그러냐

천성이 게을러서 그러냐

나뭇가지마다 잎새는 피었다만

네가 뛰어 놀던

산도 있고 들도 있다만

어디 가서 딴 살림하느냐

일년에 한 번씩 와서

인사치레만 하고 달력 속으로 지는 해는

마산에서 헤어졌던

네가 아니다. 공중에서 펄럭인다고 다 그날의

그리움이 아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고 너를 모르겠느냐

해가 뜬 다음에도 오지 않더니

꽃이 핀 다음에도 오지 않은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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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화는 13인 신작시집 「우리들의 그림움은」(창작과 비평사1981)에 시를 발표함으로 시단에 등단했다. 이 시는 「마당」(1982년 3월호)에 실렸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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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박 승 옥

너는 가슴 벅차게 밀려왔다.

사월에

무참하게 짓이겨진 젊은 꽃잎들

그 후들거리는 기억 떨쳐버리고

너는 눈부신 얼굴로 선뜻하게 피었다.

 

눈을 씻고 돌러보아도

불씨조차 숨어버린 우리들의 졸린 땅

너는 아프게  아프게 목아질 내밀며

순식간에 손 산을 뒤엎어 버렸다.

 

휘날렸던 핏빛 깃발이여

사랑과 분노의 뜨거운 부딪힘을

우리들 산하에 대한 미친 듯한 포옹과 의무를

한꺼번에 터뜨린 날카로운 함성이여

 

너는 통곡하지 않았다.

짓밟힌 꽃송이

기어이 피울음을 거두어들이고

너는 마침내 우리들 피멍 든 몸뚱이를

세차게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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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승옥은 동인지 「시와 경제」에 동인으로 참여함으로 시단에 등단했다. 이 시는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1982)에 실려 있다.



슈유리에서

 

박 영 근

흔한 바람으로서는 흔들릴 수 없어

숱한 발길질의 농간에도

함구한 가슴 그저 톡톡 채이는

돌멩이로는 구를 수 없어

흙먼지에 버려진 거리의 끝,

쫑기는 주먹 하나로

수유리를 찾았네.

 

쓰러진 우리들 묘비 곁에서

잠시 뒤를 돌아보면. 하늘은

갈가마귀들로 더욱 낮아지고

차라리 우는 몸

스스로 다치듯 넘어뜨리고

아, 눈물보다 깊어 가는 두려움이여

두려워 자꾸만 흔들리며

마음보다 먼저 쓰러지는 수유리여

 

돌아서서

더듬는 얼굴 겹겹이

혼자서 보듬은 가슴들 깊이

굶주린 듯 내려앉는 어두움

그 어두움 속에 질긴 바람 따라

부서진 싸움터 가지마다 울며

골짜기를 나는 새들 따라, 수유리는

감추었던 손 내밀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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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근은 「반시(反詩)」 동인지에의 투고를 통해 시단에 데뷔했다. 이 시는 「반시(反詩)」 제6집(1981년 11월)에 실려있는 투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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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또 와서

 

 

 

 

이 하 석

4월이 또 오는 군, 물돌씨는 바람 속에

눈물 몇 방울을 또 실려 보낸다. 아무도 오지 않고,

눈물이 찾아내는 세상은 젖어 있다.

일찍이 자신의 눈물 쪽으로 오는 눈물 한 방울 그리던

그, 이제 그는 스스로의 황혼이, 저무는 사월의

술과 물과 남은 햇빛과 흙과 공기 속에서 서럽게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다.

 

꿈엔 듯 저 숲과 물과 남은 햇빛과

흙과 공기 속으로 흐르는 바람에 실려

다가오는 흐느끼는 눈물 한 방울.

 

눈물을 맞으러 달려가는 감추인 불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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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석은 1971년 「현대시학)」지를 통해 시단에 등단했다. 「자유시「 동인으로 시집 「투명한 속」(1980)이 있으며, 이 시는 무크「실천문학)」(1982)에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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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부른다

 

최 명 학

목청껏 노래 부른다.

이 땅의 부는 바람

아픔 안고 웅웅 우는

밑둥 실팍한 나무처럼

목청껏 노래 부른다.

쉬어 터져 갈라진

칼칼한 목소리로

칼날처럼 부딪치며

쟁쟁 우는 노랫소리

받아 안을 품도 없어

이 땅은 허허론 허공

허공 중에 떠돌며

부리 내릴 텃밭은

어디냐 찾아 헤매는

이 땅의 외론 씨알

 

외롭잖다. 소리치며

목청껏 노래 부른다

기죽은 입속말의

소리 없는 비겁함

버리고 일어서서

소리치는 피울음

부러지며 소리치는

설해목의 아픔을

알아야 한다 신이여

그대 지은 이 땅의

새벽은 이미 저물어

어둠의 휘장을 치고

이리도 캄캄하게

앉아 잇다. 또 다시

새벽은 오려는가

 

두 눈을 부릅뜨고

어둠을 지키고 섰는

부엉이의 피울음

도처에서 부러진

칼라로나 깔리고

깔리어 일어선다.

 

왈깍 왈깍 치솟는

피울음 토한 뒤끝의

맑음으로 일어서서

노래 부른다. 목청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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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명학은 시집으로 「소박데기의 노래)」가 있다. 이 시는 무크「마산문학)」(1982)에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