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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밭
신달자
늙은 밭에도 잡풀은 자란다
절반은 자갈이 들어박혀 수명 다해 가는 거친 밭에도
돌 사이를 비집고 잡풀이 자란다
이렇게 천둥이 치고 치는 밤
늙은 여자의 밭에도 이름도 없는 바다의 해일이 쳐들어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잡풀이 온몸을 덮어
회초리로 쳐도 죽지 않는 잡풀이 살 속을 흔들어
다만 누워 고요라도 암벽 타듯 끌어안아라 한다
어쩌다가는 눈에 익은 배롱나무 한 그루
무슨 인연으로 천둥 낙뢰를 혼자 맞으며
방에서 새어 나간 마음 한 줄기
밤새 누가 울었는지 모르게 소나기 없었던 마당이 젖어 있다
다만 누워 어둠을 꼬아 사슬처럼 온몸에 두르니
누군가 이리 떼처럼 운다 바스러지듯 운다
얼마나 단단한 심장인가 하늘이 내려와 땅을 덮고 땅이 솟구쳐 하늘을 껴안는
늙은 밭에는 홀로 울음을 달래는
산 그림자가 산다.
ㅡ계간『시인수첩』(201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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