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인(牽引)외 4편
강선주
고장 난 차를 봄의 갓길에 세워두고
견인차를 불렀다
번지수를 물었으나 나는
갓 피어난 산수유나무 옆이라고 말했다
겨울동안 세척이 끝난 태양이
햇살의 도움을 받고도 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수화기 너머에서
산수유를 찾는 목소리가 들리고
해마다 같은 나무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찾아오는 꽃들을 생각했다
어떤 한계점에서 달리지 않겠다는 차와
무수한 꽃송이의 점화를 일삼는 산수유
잠시 처지를 바꾼 죽은 것과 산 것으로
봄은 천지에 굉음이 일 것 같다
한 생을 단 한 가지 나무로 사는 것이
지루하지 않을까
다른 꽃을 피워보고 싶다는 의지도 없이
오로지 한 가지 꽃에 이름을 걸고
그 이름을 찾아
우리는 그곳으로 간다
나른한 아지랑이를 뚫고
견인차가 도착하고
달리겠다고 하는 것이 머물겠다는 것을 달고 산길을 내려간다
털털거리며 쭉쭉 기지개를 펴는
산길 옆, 물오른 나무들은
휙휙 뒤로도 잘도 달린다
눈을 살짝 감은 멀미, 꽃이 넘치려는지
산길이 울렁울렁 거렸다
우수꽝,
구겨진 웃음과 일그러진 울음이
한 뭉치로 뭉쳐지면 그런 모양 일거에요
우수꽝,
이 모양대로 무대가 서고 사람이 모이던 때가 있었어요. 우수꽝은 잘 넘어지는 직업중 하나죠 우리는 모두 잘 넘어지는 그림자를 갖고 있어요. 그곳이 무대이고 관객들은 침묵중이죠.
누구나 한번 쯤 해본 동작이거나 놓친 동작들이잖아요.
쏟아진 나를 서둘러 수습해 본 적 있잖아요.
한밤중 벌떡 일어나는 꿈을 비난하는 그런 잠도 하나씩 갖고 있어요. 사람들은 눈 뜨자마자 직업을 향해 뛰어가니까요. 벌떡도 직업의 일종이에요. 근처의 동물이 버린 몸짓, 상상의 동물이 창살을 달래어 우리를 찢고 나오는 그런 몸짓들 말이에요. 보정 속옷에 살을 구겨 넣고 아무도 몰래 거울 속에 그 우수꽝을 풀어 놓을 때가 있는 것처럼요. 그때 내 몸은 빈 옷처럼 헐렁해 지겠지만 나는 내가 아니니까 거울밖엔 아무도 없어 다행이에요
염소
염소를 고아먹는 사람이
양지를 옮겨 다니며 풀을 뜯습니다
나는 한 밤중에 몇 마리 검은 어둠이 염소우리를 넘어 산비탈 쪽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잠겨 진 어둠을 여는 발굽엔 비탈진 이름표가 걸려있습니다. 아침이 가장 먼저 산비탈에 햇살을 풀어 놓은 이유입니다
어린 염소가 매애매애 크고 튼실한 약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염소를 고아먹은 사람은 자꾸 경사진 말과 행동을 합니다. 노린내가 나는 고약한꿈 이야기를 하며 노르스름하게 눈알만 밝아집니다. 문 밖은 휘어진 뿔이 많은 곳이라고 걱정은 허약합니다.
밤이면 산비탈이 염소우리로 숨어들곤 합니다
염소의 뿔은 동종에게나 쓸모가 있어
산비탈은 상처를 입지 않습니다
바위들이 털어놓은 과거엔
새끼가 딸린 방목(放牧)들이 있고
동그란 올가미에 걸린 캄캄한 밤이
첫 기일(忌日)로 고요해 집니다.
접선(接線)
반듯하고 질이 좋은
접선 한 다발 사와야겠어
그것들은 평평하고 얇은 평지나
푸른 수면에서 감아올릴 수 있을지 몰라
갓 면허를 딴 건축사나
측량사들을 졸라
일정량을 얻어 올 수도 있겠지
혹시 몰라
우리들이 낭비한
칼 주름들, 약국 옆 미닫이문이 뻑뻑한 세탁소에서
쓰고 남은 칼 주름이 아직도
칙칙 증기를 뿜으며 다리미 속에서
뿜어져 나올 수도 있겠지
다만, 명확과 순차를 갖고 싶은 거야
무수한 네모들이 부속인
종이비행기와 바람개비를 갖고 싶은 거야
아득한 실선의 수평선을 왼쪽으로 접을 것이야
목마르지 않는 사막이나 척박한 달에 던져주면
지평선이 일렁거리고 분화에선
무럭무럭 연기가 피어오르겠지
실선들과 직선들은 언제나
접선 될 것이니까
밥상다리가 펴질 때
친정집 부엌달린 작은방에서
양은 밥상을 핀다
딸깍, 그건 둘러앉을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다
무럭무럭 음식들이 익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봉황이 날아오르지 못하는 집은
휘어진 네 개의 삼각다리로 앙상하다
오늘은 밥 대신 만두를 빚어 상위에 가지런히 놓는다
입을 꾹 다문 만두들
꽃 같은 겹 주름을 물고,
근황을 묻지 않는 입 다문 이름이 있다
삐걱거리는 가족사를 끌고
한데 모인 식구들은 암묵해야 할
처지들을 꾹꾹 눌러 붙인다
성성 하던 다리들이 이젠
시큰거리는 무릎들을 입 끝에 달고 살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늙은 엄마 집에서
아직은 멀쩡한 다리로 사는 밥상
밑반찬 통째 뚜껑만 열어놓고
혼자 한술 뜨는 일이 잦다
수일을 겸상한 봉황은 꼬리가 지워지고
관절의 수고를 의논하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북적이는
큰 상을 펴야할 것 같다
[출처] 제9회 <시와표현> 신인상 수상작 / 견인(牽引)외 4편 / 강선주 |작성자 마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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