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너와집 /박미산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0. 8. 3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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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집

 

박미산

 

 

갈비뼈가 하나씩 부서져 내리네요

아침마다 바삭해진 창틀을 만져보아요

지난 계절보다 쇄골 뼈가 툭 불거졌네요

어느새 처마 끝에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나 봐요

칠만 삼천 일을 기다리고 나서야

내 몸속에 살갑게 뿌리 내렸지요, 당신은

문풍지 사이로 흘러나오던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고

푸른 송진 냄새

가시기 전에 떠났어요, 당신은

눅눅한 시간이 마루에 쌓여있어요

웃자란 바람이, 안개가, 구름이

허물어진 담장과 내 몸을 골라 밟네요

하얀 달이 자라는 언덕에서

무작정 기다리지는 않을 거예요, 나는

화티에 불씨를 다시 묻어놓고

단단하게 잠근 쇠빗장부터 열겁니다

나와 누워 자던 솔향기 가득한

한 시절, 당신

그립지 않은가요?

 

 

 

-2008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마음속에 들어있는 것을 그대로 표출한다고 해서 다 시가 되는 건 아닐 테고...그렇다고 누가 어떻게 생각할까 하면 사고의 자유스러움에서 놓여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쓰여 지는 시와 쓰는 시는 어떻게 다를까.

 

대부분의 좋은 시들은 오랜 숙고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서 명시로 태어난다. 조지훈 시인의 승무도 그렇고 무려 13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천양희 시인의 ‘직소포에 들다’ 가 그렇다.

 

오래 시를 쓴 시인들도 시 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는데 신경림 시인은 민요가락을 실은 시를 쓴 10년이 가장 힘들었다고 하면서 시는 사고의 자유로움을 풀어놓을 때 잘 쓰여 지더라고 한다. 이 말은 억지로 쓰려고 하는 것보다 편안한 상태에서 시를 써야 잘 써진다는 말로 들린다.

 

그냥 생각할 것도 없이 술술 읽히는 시, 그러면서도 갖출 건 다 가지고 시는 어떤 시일까. 시가 너무 난해한 시대에 특별한 해석과 풀이가 없어도 그냥 읽어서 아름답고 향기로운 ‘너와 집’ 같은 시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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