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국밥
이철
아버지는 국밥을 좋아했다
장날 아침 툴툴대는 대동 경운기
뜨신 물 한 바가지 부어주면
십 리 밖 장거리로 휑하니 나서는
아버지는 국밥을 좋아했다
딸보 덕구네 어물전 지나
저기 저만치
국밥보다 더 따뜻한
국밥집 아줌마를 좋아했다
모닥불에 몸을 녹이듯
국밥 그릇에 손을 대고 있으면
아버지는 어느새
국밥보다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
내 귀를 만져주었다
이제 나도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한 그릇 국밥이 그리운데
국밥보다 더 따뜻한
국밥집 아줌마가 그리운데
세상은 갈수록 찬밥인지라
뜨신 국물 한 그릇 부어주면
어느새 뜨건 국밥이 되는
갈수록 세상은 겨울인지라
아버지는 국밥을 좋아했다
국밥보다
국밥 가득 피어나는
사람들의 입김을 좋아했고
국밥보다 더 따뜻한
사람들의 손을 좋아했다
―시집『단풍 콩잎 가족』(푸른사상, 2020)
------------
국밥 안 먹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밥이 뭐지 하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국에 밥을 말은 것을 국밥인데 보통 식당에 가보면 국과 밥이 따로 나온다. 물론 콩나물국밥처럼 아예 조리실에 밥을 말아서 나오듯 국밥은 국에 밥을 넣어서 대접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밥 따로 국 따라 하면 그릇과 일손도 많이 필요한데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접대하는 경우 추울 때 뜨겁게 먹기 위한 음식으로 알맞은 게 국밥이다.
나 역시 국밥과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있다. 무슨 볼일로 아버지를 따라갔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내 고향 강원도 철암에서 강릉 방향 영동선 기차를 타고 도계역에 내렸는데 그 도계역 식당에서 아버지와 돼지국밥을 먹은 추억이 있다. 맛은? 기억도 없다. 다만 돼지 귀와 암퇘지였는지 젖가슴살도 있고 그랬던 것 같은데 맛보다 징그러웠던 기억이 남아있다.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밥을 좋아한다. 아침저녁 찬바람이 부는 10월을 들어서면서 따끈한 국밥이 그리운 계절이 되었다. 화자 또한 국밥을 좋아했던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국밥을 좋아했던 아니 국밥보다 국밥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사랑했던 그 아버지가 그리운 것이다.
'시를♠읽고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 따러 갔다가, 꽃 따라 가버렸지요 /김청수 (0) | 2020.12.11 |
---|---|
시를 쓰고 있는데 /권이영 (0) | 2020.10.15 |
어느 슬픔이 제비꽃을 낳았나 /곽도경 (0) | 2020.10.09 |
누나가 주고 간 시 /이철 (0) | 2020.10.08 |
초승달 /안규례 (0) | 2020.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