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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따러 갔다가, 꽃 따라 가버렸지요
김청수
동생은 세상에서
겨우 백일을 살다가 갔지요
세 살 더 먹은 나는 살아남아
철딱서니 없이 이 골목 저 골목 쏘다녔지요
어미는 꽃 피는 봄날,
꽃 따러 갔다가
꽃 따라 가버렸지요
우리 어머니
손놀림, 그렇게도 빨랐다더니
좋은 솜씨 칭찬도 자자했다더니
흰명주 옷 입고
하느적하느적 나비 되어 날아가 버렸지요
병원 침대에 누워서
눈에 밟히는 어린 새끼들 남기고
그 새벽 어둠에 말려 가 버렸지요
―계간『詩하늘/통권 100호 특집호』(2020년 겨울호)
’꽃 따러 갔다가, 꽃 따라 가버렸지요‘ 는 제목이 우선 눈길 마음길을 끌기도 하지만 시를 보고 있으니 한 편의 전설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전설을 시화한 시에서 보는 것처럼 조지훈 시인의 석문(石門)이나 서정주 시인의 신부(新婦), 그 중 의붓어미 시샘에 죽은 누이의 한의 정서를 그린 김소월 시인의 접동새를 보는 듯 하다.
슬프다면 슬픈 단명의 가족사인데 아주 먼 과거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화자에게 그 아픔은 사고로 잘려 나간 다리가 마치 있는 것처럼 만져지는 환상통 같은 아련한 통증이다. 어릴 적 어머니의 부재에 대한 안타까운 사모곡(思母曲)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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