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이이화
칼바람 한 귀퉁이 꺾어
오랜 동반자 삼아 어깨에 메고
지난밤 잠시 말아두었던 길을
새벽 어둠 속에 펼쳐 놓는다
찢겨진 잠에서 뛰어나온
코딱지만 점포가 달려와
하루치 셋값을 선금으로
계산하느라 분주해지면
동대문 어느 여공의
거친 손을 쓰다듬다가
박음질로 달려온
시장표라는 이름의 옷이
보푸라기꽃 피워 낼
주인공을 기다린다
비쌀수록 없어서 못 판다는
백화점 명품관에서
클래식 음악이 고상하게
일류 고객을 위해 목청을 높이는 동안
시장 바닥의 질척한 삶은
더 깊은 언더그라운드 속에 갇히곤 한다
학습된 유산도 변변한 취향도
정착하지 못해 빈 가지처럼
마구 흔들리는 날
소주 한 병과 안주로 곁들인
뽕짝 가가 한 구절에 입맛이 돌아
마시고 또 마시던 하급의 노래들
찾아오는 단골손님의
얇은 지갑마다 걱정이 앞서
물건값으로 건네주는 몇 푼 돈 앞에
그저 죄송하기만 한 나는,
허술함을 사고파는
삼류자영업자다
―계간『詩하늘/통권 100호 특집』(2020년 겨울호)
이재무 시인이 삼류 시를 들고 나왔을 때 때 아닌 삼류 비하 논쟁 바람이 불었다. 정겸 시인이 ‘삼류가 본 삼류들 ―이재무 시인의「삼류들」을 읽고’ 반박의 시를 발표했고 복기완 시인은 ‘삼류를 폄하한 어느 시인에게’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이 시가 계기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이화은 시인은 ‘들러리 시인에게’, 안주철 시인은 ‘삼류인생’ 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시를 쭈욱 읽어보면 분명 삼류에 대한 조소와 비아냥이 들어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면은 삼류는 자신이 삼류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 것이다. 이 깨달음이 없다면 영원한 삼류에 머물겠지만 깨달음이 있어 삼류를 벗어나 일류로 올라가려는 부단한 노력을 할 것이다.
삼류의 수모와 억울함이 없다면 어찌 일류로 올라설 수 있을까. 운이 좋아 짧은 삼류를 거쳐 일류가 된 사람은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비만 오면 바로 모래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삼류를 오래 거치고 일류가 된 사람은 누구보다 삼류의 처지를 이해하고 일류가 거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재무 시인의 시는 ‘삼류여! 분발’ 하라는 삼류의 애환과 탁마 수련을 하면 일류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든지 초보 단계를 지나 숙련된 기술자 장인이 되듯 삼류 없이 일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초보 사냥꾼은 처음부터 호랑이 사자를 잡을 수 없다. 토끼와 여우, 노우 사냥을 거쳐 유명한 포수가 된다. 암벽 클라이머들도 처음부터 높은 암벽인 삼각산 인수봉을 도봉산 선인봉을 무모하게 정복하려고 나서지 않는다. 주변의 낮은 암벽에서 충분한 연습을 한 다음 도전을 하는 것이다.
모두가 일류를 목매는데 ‘삼류가 좋다’ 는 김인자 시인의 시도 있다. 일류가 못 되는 삼류의 푸념과 넋두리가 아니라 삼류 속에 따뜻한 인간미와 달관 된 인생의 풍미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또한 삼류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쨌든 삼류는 서글프다. 백화점 명품 옷을 못 입어서가 아니다. 초라한 자괴감에 마음의 위축 뿐 아니라 경제의 고달픔까지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장 옷을 입는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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