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었니껴?
이선영
사투리는
사투리가 아니다
그 산천이 낳은
그 땅의 소리다
탯줄 타고 들려오던
나지막한 어미 당부로
제 몸에 새긴 빗살 문신이라 어색치 않은
오가는 발걸음
무던한 촉수에 가끔씩 귀가 쏠릴 때
웃음 만발한 얼굴들이 언뜻 스치고
조여 맨 객지 허리끈
느슨하게 풀 수 없던 표준어의 교편 강 건너
이제는 풀려 가는 헐렁함에 다시 살아나는가
뼛속까지 새겨진 내 사투리는
사투리가 아니다
그리움으로 편하게 단박 안기는 걸 보면
그간 별일 없었니껴?
―계간『詩하늘/통권 100호 특집호』(2020년 겨울호)
말이라는 것은 사람 이름처럼 세상에 없는 사물이 생기면서 이름을 얻어 새로운 말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시대의 생활상에 따라 버스표 토큰처럼 일시적으로 생성되었다가 쓰임이 다하면 소멸하기도 한다. 생명이 긴 말도 있고 또 신조어를 유행처럼 파생시키며 가지에 곁가지를 치다가 어느 날 가뭇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사투리는 생명이 긴 말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TV 인터넷 미디어, 통신 교통의 발달과 산업화로 많은 사람이 도시로 유입되면서 사투리도 많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이다. 게다가 사투리라는 방언, 향토어, 토속어가 한때는 무시당하고 쓰는 것을 창피해하면서 뉴스에 나오는 표준어가 최고의 말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었다.
다행히 언어의 다양성과 확장성 쓰임의 중요성으로 지금은 어느 정도 대접을 받고는 있다. 몸에 잘 맞는 옷이나 오래 신어 착 달라붙은 신발처럼 제 고향의 사투리만큼 편안하고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것도 없다. 바로 자기가 태어난 그 땅의 말, 탯줄의 소리 모태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못 알아듣는 방언도 더러 있지만 어떤 사투리는 애교스럽고 정겹고 재미있기까지 하다.
시에서 나오는 ‘껴’의 사투리는 경상도 북부지방인 안동, 영주, 예천, 의성, 청주 지역에서 쓰는 말로 알고 있다. 부모님 두 분이 안동, 영주 봉화 그쪽 출신이시라 내 고향의 원천이라서 그런지 이 ‘껴’의 사투리가 왠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정겹고 포근하게 다가 오는데 맞는지 모르겠지만 한번 흉태를 내 본다.
밥 먹었니껴? , 장에 가니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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