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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고 있는데
권이영
내가 시를 쓰고 있는데 아내는
베란다 화초에 물이나 주라고 하네
내가 시를 쓰고 있는데 아내는
은행이나 다녀오라고 하네
내가 시를 쓰고 있는데 아내는
슈퍼마켓에나 다녀오라고 하네
내가 시를 쓰고 있는데 아내는
설거지나 도와 달라고 하네
내가 시를 쓰고 있는데 아내는
화장실 청소나 하라고 하네
아니, 도대체 내가 지금
시를 쓰고 있다는데!
―월간『현대문학』(2020년 10월호)
이 시를 읽고 있으니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알아줄 만한 시를 쓰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내 좋아서 딱히 다른 일을 할 것도 여력도 없어서 취미라는 말을 붙여 시라는 것을 읽고 보고 있지만 어떤 때는 아니 시보다 나는 산을 오르고 산의 풍경이나 감상하며 꽃 사진이나 찍으면서 유유자적 걷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
시를 쓰는 일이 무슨 큰 대단한 일일까. 어느 평론가도 그랬다. 시는 일반사람들이 하는 배드민턴, 축구, 야구, 등산 등 스포츠 취미활동의 다름 아니라고. 시를 쓰는 일이 무슨 거창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자칭 시인입네 하면서 시는 지식인의 도락이니 지성인의 쌀이네 하면서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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