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묘약
박성규
믹스커피를 탄다
늘 해오던 일이라
근골격계에 걸리지 않게
능수능란하게 커피를 탄다
어떤 날은 맛이 있고
어떤 날은 떨떠름한 맛이 난다
같은 물이고 같은 커피인데
맛이 다른 이유는 모른다
어제도 그랬다
온도가 맞지 않아서 그랬을까
커피 맛이 입 안에서 뱅뱅 돌기에
소주 한 방울 떨어뜨렸더니
금방 커피 맛이 사르르 돌아왔다
카푸치노보다 더 부드러웠다
혼자 마시기도 아깝다
같이 마실 사람 없소?
―시집 『내일 아침 해가 뜨거나 말거나』 (2021, 문학의전당)
제법 많은 봄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지난주도 내렸고 지지난 주 일요일에도 비가 내렸다. 일요일 산벚꽃 뵈러 가려는데 또 비가 온다고 하네. 그래 하늘이 내리는 비는 내가 어찌할 수 없고 이 빗소리 들으면서 나도 커피를 한 잔 마셔야겠다. 전기주전자에 딱 한 잔만 나오게 물을 붓고 봉지 머리를 뜯어서 믹스커피를 탄다. 내가 즐겨 먹는 커피 또한 시에서처럼 믹스커피. 거기다 물도 다른 사람에 비해 배나 많게 넣는다. 싱거워서 무슨 맛으로 먹냐 하는데 내 입맛에는 순한 맛이 낫다. 아니 입맛이 아니라 위장이 그렇게 원한다. 순하게 타라고.
커피가 먹고 싶다고 커피집에 혼자서 가는 일은 거의 없다. 모임이 있어 어쩌다 어울려서 따라가도 나는 달달하고 보드라운 라떼커피를 시킨다. 아주 뜨거운 한여름이 아니라면 추우나 더우나 따뜻한 걸로.
이렇게 커피를 마시다 보면 맛날 때도 있고 맛없을 때도 있다. 사람의 마음처럼 늘 커피 맛이 한결같지는 않다. 어떤 때는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을 때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괜히 타 놓고 다 못 마시고 그냥 버릴 때도 있다. 같은 물 같은 커피인데 왜 맛이 다를까. 시의 화자는 그 이유를 모른다고 하지만 근골격계에 걸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만든 커피가 맛이 없으니 이를 어쩐다.
그냥 버리기엔 노동의 수고가 아까워 기상천외한 방법을 떠올린다. 커피에 술이라니... 시에서는 전혀 어울리는 않는 거리가 먼 두 사물을 가지고 비유라는 이름으로 결합을 하면 낯선 효과가 더불어 신선한 맛을 불러오는데 화자가 평소에 술을 좋아하여 그런 생각을 떠올렸을까. 어쨌든 커피에 소주 한 방울을 넣어서 환상의 맛을 만들어낸다. 얼마나 부드럽고 맛나는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나는 것처럼 혼자 먹기 아깝다고 한다.
새로운 발견이다. 화자는 앞으로도 커피 맛이 안 나면 소주를 또 한 방울 떨어뜨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매양 맛이 좋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같이 마실 누군가보다 더 맛나는 사랑의 묘약은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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