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다시 필사 시

<시>외출학개론 / 마경덕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1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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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학개론

 

마경덕

 

 

먼저 기분을 고르고 외출의 크기를 고른다

구두와 가방과 의상은 분위기와 장소, 대상에 따라 크게 부풀려지거나 축소된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핸드백에 담아들고 나가는 여성들

명품을 선호하는 패션은 대부분 전자에 속한다

 

외출을 결정하는 것은 대부분 지갑이다

구두굽의 높이와 지갑의 크기를 계산하지 못한 외출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대로에서 넘어지는 것과 같은 것

더러는 감정을 포기하고

TV 앞으로 다가가지만, 그곳에는 백화점보다 더 노련한 쇼핑호스트가

신상품의 감정을 섞어 외출을 팔고 있다

 

유행에 예민한 여성들은

끼니를 거를지언정 외출을 거르지 않는다

수십 개의 넥타이를 두고 또 넥타이를 고르는 남자들처럼

외출을 고르는 것은 그날의 기분을 고르는 것

자주 끼니를 놓친 여자들은 안색이 창백하다

 

그러나 외출엔 반드시 부작용이 따른다

쉽게 감정을 낭비한 사람들은 또 다른 감정이 쌓이게 마련,

 

그동안 구매한 과잉된 감정들은 옷장에 숨어있거나

침대 밑에 엎드려있다 집에 돌아온 외출은 늘 절반의 가격으로 계산되고

더러는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버젓이 거실에 진열된다

 

잠시 맡겨둔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백화점

함부로 소비한 감정은 다시 되돌아온다

잦은 외출에 연체이자가 붙는다는 것을

여자들은 그때야 깨닫는다

 

 

ㅡ시집글러브 중독자(애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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